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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덮고 있는 먹구름이 걷힐 것인가? 국가 파산 위기에 빠진 그리스의 민중이 국민투표를 통해 그동안 세계를 지옥으로 만들어온 핵심적 요인, 즉 글로벌 자본주의의 약탈적 금융시스템에 대해 명확한 거부의사를 밝혔다.

반년 전, 그리스에 ‘시리자’라는 좌파연합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하더라도, 이들이 어떻게 막대한 국가부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필시 모처럼 들어선 민주정부이지만 결국은 사태 수습에 실패하고,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한 사람도 많았다.

새로운 금융지원을 받아봤자 그것이 도로 채권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악순환의 구조 속에서 독자적인 통화 발행권도, 통화 관리수단도 없는 국가가 어떻게 국민들의 생존·생활을 보장하고, 나아가 경제를 다시 일으켜 빚을 갚을 수 있을지 막막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로이카’인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은 그리스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정책, 즉 부유층에 대한 중과세나 군사비 삭감 정책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서민들의 고통만 가중시키는 임금 삭감, 사회복지의 축소 등 소위 긴축정책만을 강요해왔다. 그리스의 부채는 일부 탕감하고 나머지는 상환기간을 대폭 연장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IMF 내부의 이성적인 판단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트로이카는 더욱더 철저한 긴축정책을 요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 이상의 금융지원은 없다는 협박을 가해왔다. 결국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은 제거하겠다는 의도를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대한 ‘시리자’ 정권의 응답이 7월5일의 국민투표였다. 이것은 실은 그리스 국민이 채권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깊은 의미를 내포한 투표였다. 세계의 주류 언론은 이것을 단순히 가혹한 긴축정책에 대한 찬반 여부를 그리스 국민에게 묻는 투표행위로 그 의미를 축소해서 접근했지만, 실제로 이번 국민투표는 1% 특권층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세계를 사회적, 생태적, 도덕적 황무지로 만들고 있는 글로벌 금융자본주의 질서에 대해 한 나라 국민 전체의 의견을 묻는 세계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그리스 국민은 압도적인 거부반응을 표시했다. 그런 점에서 2015년 7월5일은 세계의 정치 및 경제 질서가 근본적인 변화의 국면을 맞는 계기, 역사적인 분기점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커졌다. 왜냐하면 이날의 그리스 국민투표는 소비에트사회주의가 붕괴한 이후 지금까지 수십년간 세계를 압도해온 “대안은 없다”는 소위 네오리버럴리즘의 논리에 결정적인 균열 혹은 타격을 가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시리자 집권 이후 주요협상 일지_경향DB


생각하면, 국면 타개의 방법으로 국민투표를 택한 것은 매우 현명하면서도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 민중도, 세계의 수많은 다른 지역 민중처럼, 오늘날의 주류 미디어가 끊임없이 쏟아내는 반민중적 프로파간다의 강한 영향력 밑에서 자기망각에 빠져 특권층·부유층의 편에 서는 엉뚱한 선택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리자’ 정부는 민중을 믿고, 국민투표를 선택한 결과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다. 민주정부가 아니면 불가능한 발상, 믿음, 결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국민투표의 결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트로이카’가 양보를 하든지 안 하든지 상관없이 앞으로의 상황은 이전과는 매우 달라질 게 분명하다.

그리고 만일 ‘트로이카’의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고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한다면 그리스 민중은 한동안 몹시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내야 하겠지만, 지금까지와 같은 출구 없는 암담한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사회적 실험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그리스 민중의 경험이 세계의 다른 수많은 지역 민중에게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희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지금 그리스가 직면한 것은 그리스만이 아니라 세계의 민중 전체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다. 언론들은 흔히 이 문제를 그리스와 유럽연합 혹은 그리스와 독일이라는 각도에서 국가 간 문제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이것은 ‘국익’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특권적 부유층과 일반 민중 간의 대립과 갈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지금 그리스 내부에서도 부유층과 서민들의 입장은 같을 수 없고, 독일 내에도 ‘트로이카’의 입장에 열렬히 반대하는 그룹(예컨대 ‘좌파당’이나 녹색당)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 문제를 두고 전혀 상이한 시각이 대립하고 있다(그리스 사태가 ‘과잉복지’의 결과라는, 한국의 주류 언론의 해석은 몰상식한 억지논리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그들의 뿌리 깊은 반민중적 자세, 강자숭배 체질의 표출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대립과 갈등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실은 아직도 압도적인 것은 반민중적 세력이다. 그들은 비단 경제력, 군사력뿐만 아니라 언론, 교육, 대학, 문화, 예술을 좌우하고, 무엇보다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종식시키고 보다 민주적이고 인간적이며 정의로운, 그리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리스 국민투표 못지않게 또 하나 희망적인 신호는 아직은 드물지만 진실로 용기 있는 인물들이 세계의 중심적 정치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인물은 미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든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이다. 그는 스스로 ‘민주사회주의자’임을 명확히 공언하고, 미국이 군사대국, 세계의 지배자가 되려는 욕망을 그만두고 차별 없는 민주적 복지국가, 즉 적어도 덴마크나 스웨덴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정열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그동안 어떤 정치가로부터도 듣지 못했던 이 과감한 발언들로 지금 미국의 시민사회, 특히 젊은이들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과연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자신의 말대로, 설사 지더라도 선거과정에서 그가 행한 발언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미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숙고’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미국과 세계의 변화는 시간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용기 있는 정치적 행동은 ‘좋은 세상’을 위한 불가결한 덕목임에 틀림없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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