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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공지능 자동화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으레 인공지능 자동로봇이 움직이고 있는 산업현장의 변화를 떠올린다. 최대한 생각의 폭을 넓힌다고 해도 대개의 경우 그로 인한 일자리의 소멸과 실업의 증가 정도에 멈추기 마련이다. 그러니 인공지능 자동화의 진전이 교육정책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최근의 교육정책을 둘러싼 갈등의 원인도 일정 정도는 거기 있다고 하면 모두 “웬 아닌 밤중에 홍두깨야?” 할 것이다.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의 인공지능 자동화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는 것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로봇 밀도라는 통계가 있다. 로봇 밀도란 제조업 분야 노동자 1만명 대비 산업로봇 설치 대수를 말한다. 이 로봇 밀도에서 한국은 2016년 현재 631대로 압도적 세계 1위이다. 싱가포르가 2위로 488대, 독일이 3위로 309대, 일본이 4위로 303대, 미국이 7위로 189대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공지능 자동화의 급격한 진전이 교육정책 지형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1960년대 이래 김영삼 정부 때까지의 산업사회에서 대중교육의 개혁에 대한 요구는 주로 경제 산업계에서 왔다. 산업구조가 중공업 단계로 바뀌었으니 실업계 고등학교를 늘려 숙련 노동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둥, 고도 산업단계로 접어들었으니 대학을 늘려 고급 인력을 많이 공급해줘야 한다는 둥 하는 식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이렇게 산업단계에 맞는 인력 양성에 대한 요구가 국가 교육개혁정책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개혁정책에 범정부 차원의 힘이 실리는 좋은 측면도 있었지만 국민의 뜻을 수렴하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국민과의 소통이라야 내리먹이기식으로 교육개혁정책을 계몽하는 수준 이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인공지능 자동화 기술이 진전되기 시작하면서 경제 산업계의 대중교육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대중교육을 통해 양성된 인력이 해야 할 일들을 인공지능 자동 로봇이 점점 대체해가니 산업계에서는 대중교육에 대해 아쉬울 게 없어졌다.
그나마 경제 산업계에서 관심을 갖는 것이 글로벌 차원에서 노는 영재교육인데 그건 이미 카이스트는 과기정통부, 한국예술종합대학은 문체부, 폴리텍대학은 노동부, 국제학교는 기재부 하는 식으로 대부분 교육부 소관이 아니게 되었고, 앞으로 더 그렇게 되어갈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산업구조가 이렇게 바뀌었으니 거기에 맞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 대중교육을 이렇게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 이것은 대중교육의 입장에서는 기회이기도 하고 위기이기도 하다.
대중교육을 경제적 가치로만 바라보는 경제 산업계의 요구가 약화되면 대중교육이 경제적 종속을 벗어나 본래의 사회적 가치 실현으로 방향을 틀 수 있으니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가 벌였던 교육개혁운동인 ‘새 교육 공동체’ 운동은 이러한 지향을 잘 보여준다. ‘새 교육 공동체’는 그 명칭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대중교육의 사회적 가치에 중심을 두고 지역 단위의 교육생태계, 생활생태계 구축을 지향하고 있었다. 디지털 지식정보화 사회, 인공지능 자동화 사회의 기술적, 경제적 발전 역시 그에 걸맞은 사회적 토대의 구축, 사회적 가치의 실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이러한 교육적 지향은 정당한 것이었고, 다소 이른 감이 있어 당시엔 실효를 거두진 못했지만, 노무현 정부 말기에 혁신학교 운동으로 부활하게 된다.
인공지능 자동화 시대에 경제적 편향을 가지고 대중교육을 보면 대중교육은 그 존재이유가 불분명한데 재원만 많이 들고 늘 소소한 이해관계 충돌로 시끄러워 부담스럽기만 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이렇게 되면 대중교육은 계륵이 되어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대중교육이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건 이명박 정부에서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중교육을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보아 첨단 산업 시대에 유용한 영재를 선별하기 위한 장치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국제학교 특목고 자사고 등으로 학교를 서열화하고 본토 발음 영어 바람을 일으킴으로써 유치원까지 이 선별 경쟁에 휩쓸리게 하였다. 대중교육의 사회적 가치는 철저히 짓밟히고 대중교육의 주인이어야 할 70, 80%의 아이들은 버려졌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대중교육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했다는 점에서 거의 적폐에 가깝다. 지금 수능 정시 확대를 호소하며 다니는 학부모들은 사실 이 적폐적 정책의 피해자들이다. 자녀가 특목고 등의 선발에서 탈락하고 일반고에 왔는데 상위권 대학은 압도적 비중의 학종을 통해 주로 특목고생만 뽑아 다시 한번 경쟁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극히 좁은 문이지만 학종을 시도해 보려 하는데 일반고에서도 상위권이 아니라고 학생부를 제대로 기록조차 해주지 않는다. 이제 역전의 기회는 수능 정시뿐인데 비율이 낮아 역시 너무 좁은 문이 되어있다.
이 학부모에게 정말 문제 되는 것이 수능 비율일까? 아니다. 정말 문제 되는 것은 반복된 좌절이고, 반복된 좌절을 겪게 한 조기 선별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적 적폐이다. 지금은 좌절의 반복으로 생긴 한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능 비율을 향해 있는 것일 뿐이다.
대중교육의 위기 속에서 너무도 많은 학생 학부모들이 조기 선별에서 탈락하여 없는 존재 취급을 받으며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 상처를 치유하고 대중교육을 바로잡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은 경제 편향에서 벗어나 대중교육의 사회적 가치에 방점을 찍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관점에 맞게 정책의 입안 단계부터 시민사회가 참여할 수 있는 교육 거버넌스의 일대전환이 필요하다. 사회적 가치에 입각한 교육정책은 그렇게 만들어져야 하고, 위에서 내리먹이는 정책의 골격이 없으니 앞으로의 교육정책은 그렇게 만들어져야 한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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