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얼마 전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2000년 연 451만1000원이었던 4년제 사립대 평균등록금이 지난해 739만9000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만약 2000년 이후 대학들이 매년 물가상승률만큼만 등록금을 올렸다면 지난해 등록금은 연 700만원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비록 지난 수년간 대학들이 등록금을 동결 및 인하해 왔으나 여전히 대학 등록금은 ‘비싸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향후 3~4년 동안 등록금 인상 억제 기조를 유지하면 2000년 이후의 대학 등록금 인상률이 같은 기간의 물가상승률과 비슷해질 것이라며 당분간 등록금 인상 저지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필자는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은 경제학자로서 교육부의 이러한 주장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교육부가 등록금 동결을 고수해서가 아니라, 교육부 관료들의 무지함에 놀라서이다. 교육부가 제시한 계산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소비자물가지수(기준연도 2015년)는 66.6으로서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 102.9와 비교하면 그간 1.55배의 물가상승이 있었다. 만약 대학 등록금이 같은 비율로만 상승하였다면, 지난해 대학 등록금은 2000년 연 451만1000원의 1.55배인 약 700만원이 적합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놓친 것이 있다. 바로 우리 경제의 성장이다. 우리는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지금은 1인당 GDP 3만달러를 내다보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우리 사회의 모든 시스템과 재화 및 서비스의 공급이 이러한 경제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교육 서비스 역시 이에 합당한 양적·질적 발전을 꾀하는 것이 바로 ‘성장’이다. 지난 2000년의 우리나라 1인당 GDP는 1만1950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약 1351만원이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2만9740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약 3364만원이다. 1인당 GDP로 따진다면, 2000년과 지난해의 차이는 무려 2.5배에 달한다. 말하자면, 2000년의 대한민국과 오늘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사회라는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10년이 근 두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렇다면 경제의 성장과 사회 전반의 발전까지 고려한 적절한 수준의 등록금은 얼마인가. 당연히 2000년 당시 연 451만1000원의 약 2.5배인 1127만8000원이다. 만약 교육부가 2000년 당시의 대한민국에 걸맞은 대학교육을 원한다면 여전히 등록금은 ‘비싸다’. 만약 교육부가 2018년의 대한민국에 걸맞은 대학교육을 원한다면 지금의 등록금 약 740만원은 싸도 너무나 싸다. 소득 3만달러 시대의 대한민국에 소득 1만달러 수준의 대학교육을 강요하는 교육부라면 역사를 거꾸로 살기로 작정한 조직이다.

교육부의 등록금 동결 정책 자체에 대해 비난할 생각은 없다. 선진적인 복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를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등록금은 여전히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등록금을 요구하는 미국의 사립대학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대학 재정의 대부분을 국가가 보전하고 있다. 물론 등록금도 없다. 미국과 비교한다면 우리나라 사립대의 등록금이 아주 싼 편이지만, 등록금이 거의 전무한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매우 비싸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의 장기적 전략과 정책적 판단이다. 대학 운영에 대해 미국식 자유화를 추구해갈 것인지, 무상교육에 기반한 유럽식 복지체계를 따라갈 것인지에 따라 대학의 재정조달 방식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교육 복지에 대한 국민적 요구의 증대에 따라 지난 10여년간 등록금 인하 정책을 고수해 왔다. 이는 장기적으로 유럽식 복지체계를 일부 수용하겠다는 정부 차원의 선언인 셈이다. 그러하다면 대학의 재정조달 역시 일정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철학적 고민 없이 물가상승률 타령을 하면서 대학 등록금이 아직 비싸다고만 외쳐대는 것은 너무 안이한 태도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다. 새 시대에 적합한 인재 양성을 위해 모든 국가들이 전략적으로 고등교육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지난해 사립대 평균등록금(약 740만원)은 딱 2009년의 등록금과 일치한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다면, 2009년 이후 대학의 재정 상태는 ‘성장’은 고사하고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그나마 확대된 대학재정지원사업들은 되레 정치적으로 악용되며 대학을 더욱 혼돈 속에 빠져들게 했다. 진정으로 대학교육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부라면 ‘등록금 동결’ 이상의 무언가를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