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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질 수도 있으니 좀 가볍게 수수께끼 형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그간 우리 사회에 수많은 파업이 있었지만 이 파업처럼 장기간 진행되고 있는 파업은 일찍이 없었다. 또 이 파업처럼 정부와 사회가 무대책으로 일관한 적도 일찍이 없었다. 이 파업은 단기간에는 그 심각한 결과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파괴적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해법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고, 일단 그 파괴적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해법을 찾더라도 복구하는 데 장구한 시간이 걸린다. 이 파업의 이름은 무엇일까?

답은 출산파업이다. 페미니즘의 입장에 서 있는 분들은 출산파업이란 말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겠지만, 풍자적 의미로 쓰는 말이니 잠시만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그간 한국사회나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다루는 관점은 한국이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일어난 만성적 출산파업에 대한 대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만성적으로 지지부진 진행되는 파업이니 그 대응이 급할 것도 없었다. 이미 2010년 삼성경제연구소는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50년까지 1159만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참 선견지명으로 가득한 미래적 보고서를 낸 바 있고, 정부의 실세인 경제관료들은 지금도 이 해법을 금과옥조로 신봉하고 있는 중이다. 말은 중립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점잖게 하지만 결국 한국이라는 공장에 출산파업이 일어났으니 대체노동력을 투입해서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관점이 이러니 당근으로 주어지는 출산장려책이란 것도 무슨 수당을 찔끔찔끔 주느니 마느니 하는 유의 것이어서 애초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 참담한 결과는 현재 50만이 넘는 대학신입생 수가 20년 뒤엔 20만 남짓으로 떨어진다는 사실,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 등이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위와 같이 한국을 거대한 공장으로 보는 관점 자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동력으로 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관리하는 근대 산업국가 패러다임 자체에 있다.

피그미족과 함께 수년간 생활을 하며 연구한 인류학자의 보고에 의하면 피그미족의 주당 노동시간은 15시간이다. 피그미족은 그 이상으로 많은 노동을 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무척 게을러 보이기도 하고 이상해 보이기도 하는 이 피그미족의 노동시간은 그러나 자연생태계와의 관계에서 보면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15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면 피그미족이 생활하는 범위 내의 자연생태계가 점차 고갈되어 종족의 지속적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인류학자들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피그미족만이 아니라 역사시대 이전이건 이후건 수렵채취생활을 하는 종족들의 노동시간은 15시간 남짓이었다. 맹목적인 축적이 노동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 자연생태계와 생활생태계의 조화가 노동을 규정하였다. 이러한 점은 전통 농경사회까지 대체로 마찬가지였다. 우리 고대소설 <흥부전>에서 흥부는 제비 다리도 고쳐주고, 부모와 자식, 형제 이웃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자연생태계, 생활생태계와의 조화를 추구하는 전통사회의 인물형이다. 이에 반해 놀부는 부의 축적을 위해 생활생태계와 자연생태계를 서슴없이 파괴하는 근대적 인물형이다. <흥부전>은 흥부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근대 산업사회는 인류 역사에서 보면 매우 짧은 기간 존속해온 예외적인 사회이다. 축적 자체를 위해 노동을 하고 맹목적 축적을 위해 자연생태계와 생활생태계의 파괴를 서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 결과가 온난화, 미세먼지 같은 심각한 환경 문제이고, 가족과 지역사회의 해체라는 생활생태계의 붕괴이다. 자연생태계가 파괴되고 생활생태계가 붕괴되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유적 존재로서의 생존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느낀다. 이것이 산업화가 덜 진전된 못사는 나라가 산업화가 고도로 진전된 사회보다 행복도가 높고 유독 산업화가 고도로 진전된 사회에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이유일 것이다.

근대 산업사회는 물질적 풍요라는 측면에서는 성공한 사회지만 삶의 질이나 행복도에서는 실패한 사회이다. 생산성 중심의 산업사회 패러다임에서 삶의 질 중심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환은 인공지능자동화가 전면화하는 미래사회와도 맞는 방향이다. 그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한국을 더 이상 거대한 공장으로 보지 않고 사람들이 깃들어 살아가야 할 생활생태계로 보는 것, 한국인을 더 이상 거대한 공장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일꾼으로 보지 않고 생태계를 조화롭게 꾸려나가야 할 주체로 보는 것일 게다.

얼마 전 교육 관련 국책연구원들을 순방할 기회가 있었다. 모두들 열심히 잘하고 있었는데 묘하게 남은 것은 답답함과 두려움이었다. 연구원이니 좀 여유를 갖고 앞에서 말한 미래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 같은 것도 하고 있겠지 기대했는데, 보이는 것은 교육부처와 마찬가지로 생산성 중심 산업사회 시스템의 레일 위를 달려가는 기관차의 맹렬한 속도였다. 저렇게 맹렬한 속도로 달려가는 기관차가 이미 시야에 들어와 있는 인구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인구 절벽에 대비하여 지역의 생활생태계가 지속 가능하도록 교육시스템을 어떻게 조정하고 어떤 시스템을 어디에 어떻게 남겨야 하는지 ‘미래교육생태계지도’를 그려야 한다. 그리고 그 지도에 따라 기관차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미래생활생태계지도를 그리면 좋겠지만 너무 많은 변수가 있어 어려우니 고정된 시스템을 다루는 미래교육생태계지도부터 그리자는 것이다. 교육기관은 지역 생활생태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니 미래교육생태계지도는 현재 상태에서 가능한 미래생활생태계지도이기도 할 것이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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