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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변화방향의 시금석이 될 만한 최근의 사건을 들라면 나는 서슴없이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응과 미투 운동을 들 것이다.
그 급작스러운 구성으로 인해 남측 선수가 팀에서 배제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던 남북 단일팀에 대해 젊은 세대는 갑질이라는 신선한(?) 반응을 보였다. 가부장적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에 젖어있는 우리 기성세대에겐 무척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반응이다.
젊은 세대의 북에 대한 반응은 북을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보아 다툼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기성세대보다 더 진전된 것일 수도 있다. 혼란의 원인은 젊은 세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는 남북관계를 더 이상 가부장적 국가주의, 민족주의로 잴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여전히 가부장적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머물러 있는 기성세대의 이중성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선하다고 느끼면서도 당혹스러워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미투 운동은 국가기구에서 비중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거나 과거 민주화운동의 명망가 등을 주 타깃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미투 운동을 보며 우리는 머리로는 가부장적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시스템이 한계에 와서 그 시스템의 가장 큰 희생자였던 여성들에 의해 무너지고 있고, 무너질 만한 때가 되었다고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몸은 여전히 가부장적 국가주의에 많이 머물러있기 때문에 한편으로 불편하다. 그리고 이제까지 우리 사회의 구심력 역할을 했던 가부장적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를 대신할 대안, 합리성에 기초한 자유로운 개인의 연대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 이러한 이중성이 가부장적 권력에 의해 미투 운동이 폄하되기도 하고 악용되기도 하는 최근의 왜곡을 가져오고 있다.
앞에서 나는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 변화의 시금석이 되는 사건이라고 했다. 이 말은 미투 운동의 방향성과 그것이 겪는 혼란이 그 본질에서 개혁 정책들의 방향성과 그것이 겪는 혼란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날 개혁의 큰 방향은 산업화 시대의 중앙집권적 국가주의 권력을 하부를 향해 분산시키는 분권화이다. 논의를 교육으로 국한시켜 살펴보자.
공교육의 근거는 “국민이 자녀교육의 권한을 국가에 위임했다”는 데 있다. 이렇게 자녀교육을 위임한 국민은 주권자로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공교육을 통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 방식은 두 가지이다.
그 첫째는 한국교육이 전형적으로 그러했듯이 국민이 국가를 통해 간접적으로 공교육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역 주민이 공교육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이다. 미국 등의 나라처럼 지역주민이 교장을 초빙하고 교장이 교사를 초빙하여 학교를 구성하고 교장이 지역주민과 지자체 의회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제도이다. 분권형 교육개혁이란 대략적으로 첫째의 국가기구를 통한 간접적 통제방식에서 두 번째의 주민 직접 통제방식으로의 이행을 뜻할 것이다.
교원들은 자신의 신분과 관련해서는 국가 통제방식을 고수한다. 교총은 지역주민이 자유롭게 교장을 초빙하는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조직의 명운을 걸고 반대했고, 교원의 지방공무원화는 교원들의 반대 때문에 말도 꺼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면서 교수 학습활동이나 학생에 대한 평가에선 주민 직접통제 방식의 학교에나 허용되는 국가로부터의 자율을 주장한다. 몸은 국가통제 시스템에 있는데 머리는 주민 직접통제의 학교시스템에 있는 것이다.
교원들의 대입제도 개혁에 대한 주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능 같은 국가고사는 국가통제 시스템에서의 대학학생선발 방식이고 학생생활종합기록부 중심의 선발은 주민 직접통제 시스템에서의 대학학생선발 방식이다. 교원들은 수능의 대폭 약화, 학종 중심의 대학학생선발을 주장한다. 장기적으로는 맞는 방향이지만 분권형 교육개혁의 진전 정도가 미미한 현실에 비해 너무 과도한 주장이기 때문에 여론의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현행의 수능을 확대 강화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엘리트 교육의 원리이다. 한국은 대학교육까지 진학률이 70%에 이르러 대중교육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것을 잘하라는 엘리트 교육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엎드려 자고 소수만이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번아웃되어버리는 고등학교 교실의 풍경은 그 참담한 결과이다. 일부 계층이 독점하는 사교육 시장은 이 엘리트주의 교육을 타고 번성해 왔다. 특히 고교 교육과정과 괴리된 현행의 수능은 일부 계층이 독점한 사교육 시장이 공교육 내부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는 통로가 되어 왔다. 현행 수능의 확대 강화는 교육의 공공성을 크게 훼손하고 학교교육을 산업화 시대에 계속 묶어두는 결과를 빚기 쉽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대안은 수능을 철저하게 고교 교육과정과 일치시키는 개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015 교육과정은 문과·이과 통합 교육과정이다. 이 교육과정의 취지를 살리자면 수능 과목은 모든 학생이 이수하는 국어, 영어, 수학, 국사, 통합과학, 통합사회로 국한되어야 한다. 그리고 수학 2, 물리, 화학, 경제, 사회, 제2외국어 등의 심화 선택과목은 학종 중 교과 내신을 통해, 정의적 영역은 학종과 면접을 통해 평가하면 된다. 그러면 초기엔 수능과 내신, 학종의 비율이 예컨대 ‘5 대 3 대 2’인 수시·정시 통합의 대입이 성립된다. 이후 분권형 교육개혁, 고교학점제의 진전 정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내신 비중 확대, 수능 비중 축소 및 자격고사화로 나가면 엘리트주의를 넘어선 미래형 대입개혁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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