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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계절이다. 올해도 상은 한국을 정확하게 비켜갔지만 문학상마저 몇몇 출판사들의 안목을 피해 간 건 아니었다. 출판계 몇 분과 북한산 가는 길에 문학상이 화제에 올랐다. 

나는 참으로 같잖게도 저 상으로 연결되는 희미한 끈 하나를 가지고 있다. 못 꿀 꿈 없던 중학생 때 거창한 꿈 하나 있었으니, (풋풋풋 웃으시더라도 감당하겠습니다), 환갑이 지날 즈음에 노벨 문학상을 받거나 최소한 후보로 오르내리자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 인기 있던 월간지인 ‘학원’의 문학상에 입선하였던바, 이에 으쓱한 나머지 야무졌으나 허황된 개꿈으로 확장해 본 것이다. 범어사로 소풍 갔을 때 주제와 얼개도 대강 짜보았다. 기독 신앙의 운동권 학생이 절에 피신했다가 불교에 감화되어 개종하고 산문을 나선다는 이야기.

그건 어려운 일이긴 해도 적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어느덧 나 태어난 기해년이 한 바퀴 돌아 그때 거론했던 나이를 통과했건만 후보는커녕 소설가로 등단도 못한 채 박살난 꿈으로 피로한 형편이니 저 노벨 문학상 이야기만 나오면 미망한 미련부터 먼저 애꿎은 나에게 버릇처럼 뒤집어씌우는 것이겠다. 돌이켜보면, 소설의 세계에서 너무나 멀어진 곳에서 스러진 꿈의 한 자락을 아직도 한심하게 붙들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도 이 한마디는 꼭 하고 싶다. 달에 못 간다고 달을 보지 않을 이유는 아니지 않은가.

무정한 스타렉스는 앞으로 달리고 설악산에 하나 꿀리지 않는 송추 근처의 단풍이 자지러졌다. 오묘한 산색이 파도처럼 덮쳐 참 터무니없는 생각을 쫓아내지만 잠깐이었다. 이루지 못한 꿈은 많고도 많아 금세 또 다른 꿈에 대한 허전함으로 되돌아갔다.

개근상 빼고 세상의 모든 상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 이제껏 겪은 세파에 바탕을 둔 저 씁쓸한 문장을 겨우 고안한 뒤 괜히 무춤해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지갑이 나왔다. 어제 기업은행에서 요구한 인감증명서 떼고 난 뒤 제대로 챙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명함 사이 삐죽 나온 주민등록증을 꺼냈다. 차창 너머 북한산의 알록달록한 단풍을 배경으로 시든 사내의 납작하고 해쓱한 얼굴. 점점 낯설어지는 그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쓸쓸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런!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연재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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