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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같은 대재난을
극복하는 역량이 곧 국력이 되고
이에 대처하는 국민들의 자세가
우리의 국격이 될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투표장에 가고
또 봄날을 건널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25번째 확진자가 나온 9일 오전 서울 중구 한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전쟁이 끝났어도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가난한 땅에 돌림병이 떨어졌다. 소리 없는 폭탄, 결핵이었다. 마을마다 기침을 했다. 변변한 치료약도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슴만 쥐어뜯었다. 거의가 죽어나갔다. 폐병쟁이의 각혈은 슬픔 속에도 스며들지 못했다. 그저 하늘 아래,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죄인이 되어야 했다. “푸른 하늘에게 죄스러워/ 기침을 하면 땅바닥에/ 빨간 피가 번져나가고/ 하늘에게 죄스러워/ 꾸부리고만 사는/ 결핵이란 벌레와 살고 있는 인간아.”(권정생의 시 ‘결핵2’)
결핵은 폐허의 산하에 들러붙어 1960년대에도 창궐했다. 이웃마을 친구 아버지도 결핵에 걸렸다. 초등학생 친구는 학교를 관두고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여름 내내 들로 산으로 쏘다녔다. 해 질 녘 개구리가 줄줄이 꿰어 있는 철사 줄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 아버지는 홀로 골방에 누워 지냈다. 그럼에도 마을 어른들은 결핵에 주눅 들지 않았다. 폐병쟁이라고 따돌리지 않았다. 친구 아버지는 죄스러워 숨으려 했지만 이웃들이 그를 붙들었다. 함께 아파했다. 결핵은 잘 먹어야 했다. 동네 개를 잡아 들여보냈고, 방죽을 품어 가물치와 메기를 잡아 보냈다. 청년들은 독사를 잡으려 산을 뒤졌다. 친구 아버지는 기적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무얼 먹고 나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기적 속엔 이웃들의 사랑과 정성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신종 바이러스의 습격을 받고 있다. 모든 것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가고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금방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올 것만 같다. 일각에서는 서둘러 하늘길을 봉쇄하고 우리 사회에도 칸막이를 치자고 연일 침을 튀기고 있다. 그럼에도 둘러보면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보듬고 있다. 서로를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외롭고 두려운 곳’ 중국 우한에서 날아온 교민들을 따뜻하게 품었다. 수용시설이 있는 지역의 주민들이 손팻말을 들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많이 힘드셨죠? 아산에서 편히 쉬었다 가십시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동행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도 응원하는 글이 넘쳤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이웃이 있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옆집에 불이 나도 인터넷으로 알아차리는 시대라서 가슴도 닫고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미담이 괴담을 밀어낸다. 폐렴 위험지역으로 들어가는 전세기에 서로 타겠다고 나선 승무원들, 우한에 남은 교민들 집을 일일이 방문해 마스크와 체온계를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 밤낮으로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신종 바이러스와 싸우는 실험실 연구진, 마스크와 세정제를 나눠주는 이웃들, 후원금품을 보내는 무명씨들,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당당히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에 이어 다시 ‘바이러스 재앙’이다. 지구 숨이 점점 가빠지고 있음이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돌림병의 침공 앞에 인류는 무력하다. 나라 간의 전쟁보다 바이러스의 침투가 더 무섭다. 어떤 생명체도 완전히 고립해서 존재할 수 없다. 정글이나 동굴, 공장형 축산농장, 뒷마당의 여물통, 개집에서도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가장 최근에 밀려온 하나의 파도이다. 이제 파도는 빈번하게 밀려올 것이고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래서 바이러스 감염자는 악마가 아니다. 피해자일 뿐이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인간의 본성이 나타나고, 나라가 재난에 처했을 때 비로소 정부와 국민의 실체가 드러난다. 앞으로는 전염병 같은 대재난을 극복하는 역량이 곧 국력이 되고, 이에 대처하는 국민들의 자세가 국격이 될 것이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투표장에 가고 또 봄날을 건널 것이다. 내가 튼튼해야 한다. 그것이 남을 돕는 일이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상대를 배려함이다. 마스크를 쓰고 일터로 향하는 당신, 당당하고 아름답다.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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