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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캐릭터 뺏겼어! 엄마랑 비슷한 사람이 ‘엄마’로 나오는 유튜브 있어.” “뭔데?”

얘기를 듣고 찾아보니 채널 ‘시골가족’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 알게 됐는데 보는 재미가 짭짤하다. 밥상에 둘러앉아 가족들이 밥을 먹는 것이 전부인 평범한 영상이다. 무뚝뚝해 보이는 아버지와 엄마, 그 사이에 다정한 미소를 띠며 얘기하는 자녀가 번갈아 등장한다. 

온 가족이 한꺼번에 나올 때는 드물고 어느 날은 아버지와 두 딸만, 엄마와 딸 그리고 아들이 나오는 식이다. 굳이 장르를 구별하자면 가족 먹방이다. 하지만 이 채널을 보고 있으면 왠지 편안하고 따뜻해진다. 덩달아 느긋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혼자 웃는다.

영상에서 보이는 아버지와 엄마는 과묵한 편이다. 원래 말수가 적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동영상 촬영이 부담되고 긴장된 때문일지 모른다. 딸이 “맛있냐”고 물으면 엄마는 어쩌다 “응” 하고 대답할 뿐 대체로 식사에 매우 집중한다. “음음~ 맛있어” 하며 좋아하는 딸 옆에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간혹 들을 수 있는 부모의 음성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종종 등장하는 대용량 참기름병도 재밌다. 1.8ℓ 생수통에 담긴 참기름이 랜선을 타고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밥상에는 플라스틱 김치통 등 투박한 그릇들이 놓여 있다. 특별히 꾸미지 않은 옷차림새와 머리스타일, 방바닥에 놓인 이불, 빛바랜 벽지에 붙어 있는 스티커, 식사를 먼저 마치고 밥상 옆에 바로 눕는 아버지 모습 등이 자연스럽기만 하다.

가장 인상적인 영상은 ‘비빔밥, 미역국 먹방’ 편이다. 노란색 큰 양푼에 든 비빔밥을 다 같이 먹는 모습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나 봤을 법한 풍경이다. 미역국을 가져다주는 동생에게 “고마워” 인사를 잊지 않는 오빠, “용순아 빨리 와 맛있다” “엄마 국물 줄까” 서로를 챙기는 마음, 동생에게 “맛있다”고 칭찬하거나 “별거 아닌데 맛있네”라며 좋아하는 모습이 정겹다.

영화로 치면 초저예산 격인 ‘시골가족’은 영상마다 수십만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꾸미지 않은 순수함, 가족 간의 따뜻한 정, 작은 공간이 주는 친밀함, 때 묻지 않은 순박함, 좋아요와 구독을 강권하지 않는 태도 등 많다. 그중 밥상의 소구력은 대단하다. 밥상이라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에도 등장한다. 송강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꼬마와 함께 한강 매점 안에서 따뜻한 밥상을 차려 먹는다. 한입 가득 입을 벌려 흰쌀밥을 먹는 꼬마의 모습에서 안도감과 작은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에도 밥상이 자주 나온다. 비좁은 집에서 부대끼며 사는 할머니와 손녀까지 이들 대가족은 서로의 끼니를 챙기며 힘들고 보잘것없는 삶이지만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런데 두 영화 속 밥상을 가운데 둔 이들은 혈연이 아니다. 밥상은 혈연이 아닌 이들도 ‘식구(食口)’로 만들 만큼 강력한 마법을 지녔다. 

‘시골가족’ 영상마다 일기와 자기고백처럼 올라 있는 수많은 댓글에는 밥상을 향한 부러움이 넘쳐난다. “숟가락 들고 밥상에 끼고 싶다” “30만원짜리 킹크랩 먹방보다 이게 훨 침 흐른다” “요즘 시대 저렇게 나란히 앉아서 집밥 같이 먹는 가족이 몇이나 있을까” “반성하게 되네요” “울컥해서 눈물이 납니다”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풍요 속 빈곤을 살아가는 시대에 ‘시골가족’ 밥상은 무엇이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 잔잔하게 알려준다. 

영상 중에는 큰딸이 신상에 관해 밝힌 내용도 있다. 대학교 간호학과에 합격해 오는 3월이면 신입생이 되는 만큼 전처럼 자주 영상을 올리지 못할 것 같다는 사연이다. 가족 얼굴이 보고 싶을 때 꺼내 보려 휴대폰으로 촬영을 시작하게 됐다는 얘기도 담았다. 

유튜브 채널이 뜻밖에 큰 사랑을 받으면서 갖게 된 부담감도 솔직히 털어놨다. 처음에는 부모님께 촬영 기술을 알려드릴까 고민도 해봤지만 실제 힘들 것 같고, 따로 카메라를 살 만한 여건도 안되고, 또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전처럼 자주는 아니더라도 영상을 올리겠다며 감사 인사를 전한 그는 한마디를 남겼다.

“여러분들도 가족들과 좋은 추억 많이 만드세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소박한 밥상에 있다고 말이다. 부럽다면 그들처럼, 오늘 저녁밥상 어떨까.

<김희연 오피니언(소통)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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