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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이 가시화되고 있다. 아직 향후 추이가 불투명하긴 하지만, 활은 이미 시위를 떠났다. 어떤 식이든 안철수발 정계개편이 이루어질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차기 대통령을 목표로 한 정치인 안철수의 집요함이 이 모든 사단의 출발점일 터다. 그는 지금 제대로 된 주인을 찾지 못한 보수의 땅을 개간해 자신의 영토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정치공학적 시선을 거두고 ‘촛불 이후’의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의 형성이라는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가 볼 때 그의 이번 행보는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정치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어쩌면 이를 통해 정치인 안철수는 자신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촛불혁명은 단순히 정권교체로 끝나서는 안된다. 이른바 ‘87년 체제’가 낳은 지금의 ‘결손 민주주의’를 좀 더 온전하고 건강한 민주적 정치체제로 대체해야 한다. 이 체제에서는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합리적인 진보와 보수가 다원적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지반 위에서 생산적 경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의 분열과 갈등은 모든 민주주의 사회의 영원한 구성 원리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아무리 높아도 보수적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은 다른 여느 민주 사회에서처럼 언제나 상당한 비율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에 이런 보수적 유권자들이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정치적 보금자리가 없다는 데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자유한국당은 유사-파시스트 수구 정당일 뿐이다. 내년 지방 선거와 다음 총선을 통해 이 당을 완전히 퇴출시키거나 최소한 주변화시키지 않고는 이 땅의 건강한 민주주의 발전과 촛불혁명의 완수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만약 현정부의 개혁이 지지부진해진다든가 하면 보수적 유권자들의 표가 갈 곳을 찾지 못해 결국 다시 한국당으로 몰릴 개연성이 결코 적지 않다. 이런 사태를 피하자면 합리적 보수 정당이 저 수구 정당을 결정적으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바른정당의 이른바 ‘개혁 보수’ 실험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지금 김무성을 비롯한 저열한 정치적 기회주의자들의 배신 때문에 파산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 보수 정치의 관성적 힘은 너무 강했던 데 비해 새로운 이념적 좌표 설정은 설득력이 너무 약했다. 단순히 보수가 진보에 대해 더 이상 ‘종북몰이’만 하지 않는다고 합리적 보수가 될 수는 없다. 복지 같은 진보적 의제를 얼마간 수용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일은 박근혜도 했다.

내가 볼 때 바른정당 정치인들은 보수개혁의 핵심적 지렛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안보 보수’의 관점을 버려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유승민 대표는 지금도 ‘햇볕정책’에 대한 대립각 세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요즘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강철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하여 더 고통받는다.” 남한의 수구 보수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다. 한국당은 지금도 여전히 어떻게든 분단 상황을 악용해서 정치적 입지를 회복하려 하고 있다. 우리의 보수가 합리적이고 개혁적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바로 이런 분단 체제의 망령을 떨쳐내야 한다. 기대컨대, 정치인 안철수에게 주어진 사명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분단체제를 평화적 대화로 극복하려 했던 DJ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약속했었다.

한국 보수의 개혁적 재정립은 헌법보다 국가보안법을 앞세우는 정치적 도착에서 벗어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과 북한과의 차이를 선명히 하되, 북한을 단순히 적대시하지만 말고 보수가 앞장서 그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공존을 지향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설픈 흡수통일에 대한 환상은 물론 적화통일에 대한 비현실적 공포도 버리고, 이미 현실인 한반도 양국체제를 공식화하고 안정화할 정책적 대안들을 찾아야 한다.

지금 두 당의 통합 시도를 두고 ‘보수 통합’이 아니라 ‘중도 개혁 통합’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치적 딱지가 아니라 민주당의 오른쪽에 분단체제에 매몰된 안보 보수의 시각을 버린 건강한 민주 정치 세력의 영토를 확보하는 일이다.

안철수 대표의 정치적 승부수가 이런 방향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장은주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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