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래된 기억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이런 요지의 오프닝 멘트를 들었다. 두 사람이 눈밭을 걸었는데 발자국은 하나뿐일 때, 그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 말대로라면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업혀갔다는 이야기 아닌가. 문득 예수님과 부처님이 떠올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업어달라고 두 분의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는 형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연암 행적을 좇아가는 열하일기 답사에서도 그와 비슷한 궁리가 일어났다. 연암의 발길에 내 발자국을 포개려는 건 퍽이나 무망한 일이다. 238년 세월은 연행사들의 흔적을 지우기엔 넉넉한 시간이다. 비행기, 기차, 버스를 차례로 갈아타며 인천-대련-단동으로 이동하는 동안 압축된 풍경에서 길은 많이 생략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바퀴를 벗어나 내 발로 걷는 기회가 왔다. 연암이 토해낸 문장들은 주위 풍경과 출렁출렁 몸을 반죽했기에 가능한 작업이 아니었을까. 한 걸음마다 한 문장으로 쌓아올린 게 <열하일기>이겠다.
연행길의 가장 힘든 코스였다는 청석령 고개. 먼지 나는 신작로를 걸어서 오르니 연암이 <열하일기>에 묘사한 풍경이 나타났다. 관제묘가 보이고 수령 300년은 훌쩍 뛰어넘을 것 같은 수양버들이 자리하고 있다. 풍채 좋은 이의 엉덩이와 궁합을 딱 맞추는 돌도 수많은 나그네를 맞이한 듯 반질반질하게 닳았다. 필시 연암 일행도 쉬어갔음에 틀림없을 것만 같은 나무 그늘에서 오래 서성거렸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면 연암이 요동벌판을 맞닥뜨리기 전에는 중국의 산천경개에 그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란 짐작도 든다. 산의 골격과 나무의 체격들이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런 나무와 풀들 중에서 아주 친근한 꽃 하나가 있다. 그때의 조선에서도 흔했을 까치수염이다. 흰 꽃들이 다닥다닥 모여서 날씬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까치수염. 줄기에 털이 빽빽하다.
고금을 막론하고 길 위에선 자신의 보폭으로 걸어야 하는 여행객들.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어찌 보면 큰 물음표 같더니 다시 보면 거꾸로 꽂힌 우산의 손잡이 같기도 한 까치수염을 그러쥐면서 멀리 북경 쪽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치수염,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지난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큰까치수염 (0) | 2018.07.31 |
---|---|
모새나무 (0) | 2018.07.24 |
접시꽃 (0) | 2018.07.10 |
선백미꽃 (0) | 2018.07.03 |
기생꽃 (0) | 2018.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