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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詩想과 세상

날씨 수리공

opinionX 2022. 8. 22. 10:46

부러진 빗줄기가 흩어진 눈송이를 본 적 없지만, 날씨를 수리하는 수리공을 본 적은 있다 양동이에 빗물을 받거나 지붕에 쌓인 눈 더미를 치우는 수리법이 아니라 날씨들의 뒤끝, 우산이라든가 눈이 녹지 않은 오르막에 모래를 뿌리는 일을 하는 수리공을 많이 봤다

서둘러 장독 뚜껑을 덮거나 빨래를 걷는 일도 알고 보면 날씨를 수리하는 일이다

앞서가는 절기들에 도착하는 계절 모두 수리하고 손을 봐야지만 싹이 트고 까끄라기가 생기고 보리숭어들이 연안을 지나간다 고인 물의 물꼬를 트는 일, 새가 둥지를 떠나는 일도 모두 관련이 있는 것 날씨 수리는 끝이 없고 계속된다

무엇보다도 절그럭거리는 빗줄기를 허리며 어깨에 넣고 있다가 비가 그치고 개이면 씻은 듯이 낫던 그런 수리공이 그중 제일이었다

이서화(1960~)

‘비설거지’라는 말이 있다. 비가 오거나 오려 할 때, 비를 맞히면 안 되는 물건들을 거둬들이거나 덮는 일이다. 하늘 저편에 먹구름이 몰려오면 서둘러 멍석에 널어놓은 고추와 나락을 거둬들이고, “장독 뚜껑을 덮거나 빨래를 걷”었다. 비가 쏟아지면 어머니는 “양동이에 빗물을 받”아 걸레를 빨고, 아버지는 삽 한 자루 들고 물꼬를 보러갔다. 시인은 이런 일 하는 사람들을 ‘날씨 수리공’이라 부른다. 그중 제일은 비 올 기미만 보여도 쑤시는 “허리며 어깨”다.

불볕더위, 홍수, 가뭄, 산불…. 지구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당면한 기후위기는 함부로 지구를 사용한 인간의 책임이다. 빠르고 편한 것만 추구하며 환경파괴를 일삼은 결과다. 기후변화가 심해질수록 힘 있는 자들은 더 많이 누리고, 힘없는 자들은 더 큰 피해를 본다. 사회적 재난에도 불평등이 심하다. 지구촌 곳곳에 골고루 비를 뿌려주면 좋으련만 이마저도 편차가 크다. “계절 모두 수리하고 손”보면 씻은 듯이 낫게 해주는 ‘날씨 수리공’이 절실하다.

 

김정수 시인


 

연재 | 詩想과 세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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