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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 시인


해발 800m 산속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장소는 살고 있는 집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 들어 하는 결혼이라 쓸쓸할 텐데, 산속에서 결혼을 한다고 하니 더 맘이 쓰였다. 일찍 집을 나서 서울로 가, 선배 시인 딸 결혼식에 잠깐 참석하고 원주로 향했다. 출판사를 시작한 후배 차를 타고 가며, 출판시장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와 내가 하고 있는 인삼장사 얘기를 나눴다. 얘기에 속내를 풀어놓을수록 작은 출판사나 영세 삼장사는 다 힘든 상황으로 치달았다. 길가 야산에는 벚나무 단풍이 들고 있었다. 주말인데도 차량이 많지 않아 고속도로가 뻥 뚫렸다. 시원하게 차가 빠지자 후배는 좋지 않은 경기 덕을 우리가 톡톡히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고속도로를 내려온 차가 원주 시내를 지나 계곡의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공원관리소에서 목적지를 말하자 차를 통과시켜주었다. 구불텅구불텅한 산길로 차는 달렸다. 몇 년 전에 와 보았을 때는 없던 새 다리도 놓였고 길이 한결 좋아져 있었다. 


 몸이 많이 안 좋을 때였다. 친구들이 나를 태우고 갈 곳이 있다고 말하고 막무가내로 이곳으로 데려왔었다. 독한 음식 없는 이곳에서 한 달 정도 몸을 추스르고 나오라고 했다. 그냥 혼자 있다가는 큰일 난다고 하며. 나는 한 열흘을 머물렀었다. 친구는 산속에서는 이게 영양식이라고 하며 냉동실에 얼려놓았던 돼지 족을 과주기도 하고 말려 놓았던 산약초로 물을 끓여주기도 했다. 지게로 나무를 져 나르기도 하고 계곡 얼음물로 오장육보를 씻어내며 한 열흘 보내니 몸이 좀 나아진 것 같아 하산 길에 올랐었다.


띄엄띄엄 산길 나무에 시화가 걸려 있었고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걸음을 멈추고 시를 읽고 있었다. 아마 이 고장 시인들이 시화전을 열고 있는 듯했다. 낙화하는 낙엽, 산 구릉을 잇는 새소리, 계곡을 점자로 읽어 내리는 물소리, 이처럼 깊은 것들이 다 배경이 되는 곳에서의 시화전은, 오히려 배경에 압도되기 십상이어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자로 올라가는 일차선 길가에 차가 힘들게 자리를 잡고 멈춰 섰다.


산속 낙엽 위의 다람쥐 (출처: 경향DB)


차에서 내려 찻길을 버리고 40분을 산길을 더듬으며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사람들이 많이 왔는가 물어보고 싶었으나, 목적지인 친구의 집에서는 휴대전화가 잘 안 터진다는 후배의 말에, 그냥 돌다리를 조심조심 건넜다. 길가에 알밤들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바람에 흔들리는 밤송이를 품고도 맑기만 한 가을 하늘을 보았다.


“한식에 나무 심으러 가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거짓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편 내편 양편나무/ 입맞추어 쪽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이 나무 저 나무 내 밭두렁에 내나무….” 


며칠 전, ‘광고의 나라’라는, 광고 카피로 하루를 시작해 하루를 마감하는 시풍을 빌려, 식물들의 이름과 이미지로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내는 시를 써보자는 발상을 했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나무타령을 피해 갈 수 있을까 걱정하며 잊고 있던 나무타령을 찾아보았었다. 돌다리를 다시 건너고 숲길로 걸음을 옮겼다. 산속 결혼이라고 하객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렇게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이 다 하객들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나무타령을 자연타령으로 바꿔 산골결혼식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폐백은 다람쥐나 청설모가 맡고, 경비에는 엄나무, 경호에는 화살나무, 식수 담당은 물에 대한 아픔이 있는 고로쇠나무가 하고, 술 담당은 절대 자작나무 시키지 말고 소태나무한테 일임하고 바텐더는 잔대가 맡고, 음악은 국악으로 가서 꽹과리는 치자나무 피리는 버드나무 북은 북나무 스피커는 꽝꽝나무 노래는 오소리가 제격. 사회는 주목나무가 좋겠고 식권담당 이팝나무 축의금 접수는 은행나무 화촉은 산초나무 화장실 안내는 뽕나무 쥐똥나무 다 사양하고 싸리나무로 가라. 신부화장은 분나무 조명은 반딧불 박수는 손바닥 붉을 때까지 단풍나무가… 주례는 누가 맡으면 될까 고심해도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산속 하객들은 의외로 많았다. 집 입구에 누구누구의 두 번째 합궁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을 건 아랫동네 사람들도 있었고 신부 친구 화가들과 신랑 친구 시인들 도합, 30여명은 되어보였다. 들국화 부케를 든 신부는 예뻤고 백발에 청바지를 입은 신랑은 순수했다. 주례는 격식을 차리지 않았고 임시로 건 가마솥에서는 소머리가 삶아지고 있었다. 가끔 양철 지붕 위로 밤톨이 떨어져 좌중의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풍광 좋은 곳을 보기 위한 정자도 있지만 풍광을 완성하기 위한 정자도 있는 법. 그날 산속의 결혼식은 결코 산속의 정취를 흩뜨려놓지 않았다.


어둠 속, 갔던 길을 되내려오며 나는 대선을 앞둔 현 정세를 자연의 이름과 연결시켜 보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아, 자연의 이름으로 자유롭게 연결되는 세상이 오기를 기원해 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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