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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저 산에 언제 다 오르랴 싶지만 꼭대기로 가는 길은 언제나 좋다. 산 아래에서 아무리 찧고 까불어대도 바람과 구름만으로 천만변화를 일으키는 하늘만 상대할 수 있잖은가. 허무한 마음과 맹랑한 말들을 뒤로한 채 순한 짐승처럼 헐떡이다가 그곳에 천천히 도착하면 누구나 오직 한마디의 외침만 내지르면 된다. 마음속 가득 쌓인 먼지까지 끌어올리면서, 야호! 천관산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참 생소했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 있는 산 이름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미처 그 이름을 몰랐을 뿐, 산은 이미 웅장한 산으로 장흥에서 장흥사람들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장흥을 지키고 있었다. 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변산과 더불어 전라도 5대 명산 중 하나였다. 억새가 유명해서 가을이면 전국 규모의 큰 축제가 벌어진다고 했다.
전남 장흥 천관산 억새밭 전경 (출처: 경향DB)
천관산은 해발 730여m로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산이다. 주차장에서 영월정을 지나 가파른 고개를 치고 올랐다. 양근암과 정원석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걸을 땐 게으른 황소의 불룩한 뱃가죽을 탄 기분이었다.
드디어 천관산의 정상인 연대봉에 섰다. 한려수도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발아래 보이는 저 멀리 어딘가에 보성 소리를 완성한 명창 정응민의 생가, 소설가 이청준의 무덤, 영화 <천년학>의 촬영장이 숨어 있을 것이다. 또 그보다 조금 먼 바다에는 여러 섬들이 수려하게 떠 있었다. 그 섬 중 하나는 소록도. 저 호젓한 섬들이 없었다면 바다는 얼마나 적막하랴.
환희대에 이르러 잠시 쉴 때였다. 한 친구가 배낭에서 귤을 꺼내 나눠주면서 말했다. “껍질에는 농약 성분이 묻어 있으니 함부로 던지지 말게.” 우리는 쓰레기봉투를 하나 만들어 귤껍질을 모았다. 또 한 친구는 부시럭거리더니 미리 3등분한 사과를 꺼내주었다.
귤은 껍질만 챙기면 되는데 사과는 부속물이 좀 많다. 몸통이야 그냥 먹으면 되겠지만 껍질, 씨, 씨방은 어떻게 처리할까. 우적우적 베어먹고 나면 입안으로 들지 못한 그것들은 순식간에 쓰레기로 변해버린다. 음식과 음식쓰레기는 이리도 가깝군, 하다가 문득 굴비에게로 생각이 연결되었다.
웬만한 밥집에 가면 손바닥만한 굴비가 인원수대로 나온다. 생선을 무척 밝히는 나는 한 마리를 냉큼 앞접시로 데리고 온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열심히 헤집지만 머리 떼고, 내장 파내고, 가시 빼고 나면 정작 발라먹을 게 별로 없기가 일쑤다. 그저 내 침만 잔뜩 묻힌 채 난도질당한 굴비는 그냥 쓰레기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어느 날 가깝게 지내는 출판사 대표가 죽은 생선과 다투는 나의 서툰 솜씨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우리 친정아버진 생선 드실 때 접시 위에 아무것도 안 남아요!” 젓가락 끝이 아니라 그 말끝에 생선 바르는 비결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불에 익힌 생선을 먹는 데 머리, 아가미, 지느러미, 내장, 몸통, 껍질, 꼬리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같은 생선의 몸에서 먹을 것과 못 먹을 것을 꼬치꼬치 구별할 게 뭐 있을까.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있을 뿐이지 젓가락에 무슨 좌우의 구별이 있던가. 그렇게 생각하니 고개를 박고 먹을 만한 것만 골라 먹는 게 어쩐지 좀 쪼잔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웬만한 생선이라면 그냥 통째로 먹는다.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전부 홀랑 먹어버리는 것이다.
전어한테는 참 미안한 이야기인데 가을이면 전어철이 돌아왔다고 술꾼들은 너도나도 입맛을 다신다. 나도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해 누군가가 잡아다 준 전어를 먹는다. 회로 먹기도 하지만 구워 먹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이 방법이 톡톡히 효과를 본다. 쩨쩨하게 찝쩍거리지 않고 전어를 들어 통째로 머리부터 간장에 찍어 빈대떡 베어먹듯 한 움큼씩 나누어 먹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꼬리를 먹을 땐 꼬리에 묻은 거친 물결의 흔적까지도 함께 씹어 먹는다. 그렇게 남김없이 먹어주는 게 전어에게는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치욕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게 차라리 전어에 대한 깨끗한 예의이리라. 그러니 이젠 나도 생선을 제대로 먹을 줄 아는 축에 끼게 된 것일까?
천관산에는 곳곳에 주상절리가 발달하여 큰 바위들이 다정한 형제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껍질째 3등분한 사과를 받아 입으로 넣기 전에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까만 사과씨 두 개가 우화등선(羽化登仙)한 어부처럼 한가운데 타고 있는 게 마치 한 척의 돛단배 같았다. 손가락 사이로 한려수도 한 폭이 척 걸려들었다.
사과도 위아래가 있다. 사과나무의 줄기에서 양분을 공급받은 꼭지가 달린 부분을 머리라고 하자. 그 반대편의 잘록한 부분은 사과의 엉덩이이리라. 나는 한 마리의 굴비를 먹듯 사과를 차례로 먹었다. 껍질도, 씨방도, 씨도. 물론 통통한 살까지. 다시 말해 사과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아니 사과의 똥구멍까지. 내 손바닥은 빈 접시처럼 깨끗해졌다. 물론 씨는 깨물지 않았다. 내 캄캄한 몸을 통과해나간 무심한 씨앗은 어느 양지바르고 축축한 곳을 만난다면 한 그루의 사과나무로 다시 자라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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