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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17년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또 일제히 낯익은 노동운동 위기론이 등장하고 있다.

이번엔 노조운동 활동가들, 그리고 진보정치운동에서 시작했다. 왜 정치적인 격변기마다 노동운동 위기 담론이 대두할까? 그리고 이런 담론은 근본주의에 대한 공격을 꼭 수반한다.

노동운동이 변해야 노동운동이 산다? 하지만 과연 변해야 할 것이 노동운동 혹은 노조인가, 아니면 그 노동운동이 자리 잡고 있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전체인가? 즉 87년체제의 극복, 아니 전환인가?

노동사회학자인 필자는 노동운동의 ‘위기론’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 위기는 한 번도 제대로 확정되지 않았으며 그 자체로 정치적 언설이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시각은 ‘위기’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전환’을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 이행 이후 한국 민주노조운동, 혹은 노동운동은 지난 1987년 이후 30년을 경과하면서 이제 전환의 한 순환을 마쳤다. 그것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형성과 전환과 맞물리면서 진행된 과정이기도 하다. 그 방증으로 지금 87년체제의 극복이 운위되고 있다.

하지만 극복되어야 할 87년체제는 무엇인가? 그 체제에서 한국의 노동계급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필자는 여러 글들에서 민주주의는 단일하지 않으며 하나의 지점만을 경과하는 이행도 아니므로 ‘전환’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것은 지난 촛불에서 봤듯이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민주주의 회복’의 시도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민주화도 있고, 역민주화도 있고, 재민주화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노동계급은 ‘제1의 전환’ 이후에 어떤 자기 전화를 모색할 것인가? 이것은 87년체제 이후가 불확정적이듯, 똑같이 그리고 동시에 열려있는 질문이다.

1987년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로 ‘열린 공간’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열리지 않았다. 사실 6월 민주화항쟁 이후 예기치 않았던 노동자들의 계급적 진출과 조직화 이행 이후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국가의 억압적 전략은 지속되었고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뿐만 아니라 당시 재야민주화운동과 밀착, 이른바 ‘범민주 연합’을 구성하고 있던 자유주의 야당세력은 국가의 노동탄압에 대해 소극적이었고 노동과의 연대정치를 구사하기보다 민주노조운동에 대해 거리를 두었다. 이는 1989년 4월20일 김대중의 한 달간 파업자제 촉구 입장 발표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정확히 구별하자면 보수 우익세력은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 ‘탄압’ 세력이었고, 중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세력과 그들이 주도한 민주대연합은 정치적 민주주의로부터 노동을 ‘배제’한 세력이었다.

이제 지난해 10월29일 시작된 촛불이 주도하는 범 박근혜 퇴진운동에 힘입어 자유주의 정당세력은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박근혜 퇴진 운동이 시민들, 중간층들 이전에 조직노동, 그리고 조직노동보다도 그 주변의 비정규직 정리해고자 투쟁을 하던 변방의 노동자들과 민중운동에 의해서 먼저 시작되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것이야말로 촛불 중심의 퇴진운동과 1987년 6월항쟁이 마무리되던 시점인 7월에 본격적으로 터져나온 노동자대투쟁의 차이다. 하지만 촛불 이후 다시 1987년 헌법질서로 회귀했다. 헌법과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켜졌다. 하지만 이 체제는 또한 노동자대투쟁을 통합하지 못한 노동배제의 민주주의였고, 그 결과 비정규직의 급격한 도입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된 민주주의였다. 그런 ‘민생’의 실패가 10년간의 우익세력의 집권으로 귀결되었다. 이제 다시 원점이다. 아니 하나의 전환을 끝낼 것인가라는 기로에 서있다.

해서 질문해야 할 것은 동시적이다. 노동운동과 정치적 민주주의 양자의 새로운 전환은 불가능한 것인가?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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