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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여성’이라는 단어가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단어 그 자체로만 풀이한다면 직업을 갖고 있는 여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단어는 엉뚱한 의미로 사용되곤 했다. 지금도 국어사전에서는 ‘직업여성’을 “주로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여자가 직업이 있으면 유흥업 종사자라니 시대착오적이다.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는 ‘직업여성’이라는 단어는 마땅히 사라져야 했다.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다.

한때 자주 쓰였으나 사라진 단어를 더 찾아본다면, ‘고학생’도 빼놓을 수 없다. 학비를 벌며 고생하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고학생’이라는 단어는 그 사람이 ‘학생’임을 강조한다. 학비를 벌기 위해 하는 일의 성격에 대한 질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학생’을 강조하는 한, 그 사람은 학업을 마치면 노동도 그만두리라는 예측을 포함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고학생’, 대학 진학자가 매우 드물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단어다. 대학 진학률이 70%를 오르내리는 시대가 등장했고, ‘고학생’이라는 단어는 아르바이트생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다. 아르바이트, 본래 독일어로 노동이라는 뜻이다. 어쩌다가 한국어에서 아르바이트가 생업이 아니라 부업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현대 한국어에서 그런 의미로 통한다. 

밤에 비행기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한국의 풍경, 특히 서울의 풍경은 말 그대로 불야성이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잠들지 않는 도시, 24시간 동안 움직이는 도시.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한국을 이렇게 표현한다면, 그것은 자랑일까? 그저 특성을 묘사한 것일까? 아니면 숨겨진 부끄러움일까? 비행기가 고도를 점차 낮추면 밤이 없는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하나둘 드러난다. 교회의 붉은 십자가 사이에서 이 도시를 24시간 동안 잠들게 하지 않는 상점이 보인다. 교회만큼이나 많은 24시간 편의점과 편의점 사이에 ‘24H 맥도날드’가 있고, 24시간 영업하는 주유소와 김밥집이 있다. 도시를 잠들지 않게 하는 그곳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을 우리는 시간제 노동자라는 말보다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이라 부른다.

시간제 노동자로 부르냐,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냐는 단순한 호칭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아르바이트가 부업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한, 아르바이트 노동에는 젊을 때 임시로 잠깐 하고 마는 일이라는 뉘앙스가 따라붙는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고학생의 이미지로 시간제 노동을 포장하면 마치 시간제 노동은 젊은 시절의 낭만인 듯한 착각을 유발한다.

아르바이트라고 불리는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이 고학생은 아니다.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로 미화될 수 있는 연령대의 사람도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10대 청소년의 전단지 돌리기부터 60대 노인의 지하철 택배까지, 대학생과 주부의 파트타임 잡부터 정규직 노동자의 투잡과 해고 노동자의 생계 수단까지” “나이와 성별, 업무 성격”을 가리지 않는 노동에 의해 24시간 움직인다. 그 구체적인 노동을 아르바이트라는 부업의 뉘앙스를 잔뜩 풍기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

부업으로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시간제 노동자에게 그 노동은 부업이 아니라 생업이다. 그럼에도 사회는 그들의 노동을 아르바이트라 부른다. 아르바이트라는 단어는 현재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하는 일의 성격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 ‘고학생’이 사라졌고, 경력단절에 처한 고학력 여성 노동자가 시간제 노동으로만 재취업할 수 있고, 빈곤을 피하기 위해 형편없는 임금에라도 시간제 노동을 해야 하는 노인이 있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시간제 노동을 본업으로 할 수밖에 없는 대졸자가 있는 현실을 아르바이트라는 단어는 담아낼 수 없다. 

아르바이트를 대신한 ‘알바’는 부업이라는 딱지, 젊어서 하는 임시 고생이라는 딱지를 떼어내고 현실을 반영하려는 고육지책으로 만들어진 ‘민중언어’에 가깝다. 비록 ‘알바’는 ‘전문용어’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아르바이트라는 속임수 용어보다는 현실을 더 잘 표현한다. ‘전문용어’보다 ‘민중언어’는 세상의 변화를 더 빨리 포착한다. 정책언어는 때로 전문용어보다 오히려 민중언어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책이 사람을 배반하지 않으려면.

이 칼럼을 쓰기 위해 책 한 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주 3일은 맥도날드와 우버이츠 라이더로 일하며 생계비를 벌고, ‘알바’노조 위원장이기도 했던 박정훈씨가 쓴 책이다. 그 책의 제목은 큼직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묻는다.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그렇다. 생업으로 시간제 노동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음에도 왜 ‘알바’는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 이들을 없는 존재로 만들어 노동 관련 법에 의해 보호해야 할 시민의 범주에서 제외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의 질문을 따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 법정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주휴수당과 적정한 휴식시간을 제공하지 않으려는 속셈이 아니라면.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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