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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백화점이 있고, 서울로 가는 전철이 있는 도시로 전학 갔다. 같은 날 광주에서 전학 온 아이가 있었다. 우리는 같은 반에 배정받아서 내내 붙어 다녔다. 하나는 말이 느린 데다 툭하면 ‘기야?’라고 되물어 반 아이들을 배꼽 빠지게 했고, 하나는 저도 모르게 전라도 사투리가 입에서 튀어나올까 봐 우물댔다. 그래서 둘이 따로 점심을 먹었고, 고향이 그리울 적마다 빈 운동장에 나란히 앉아 훌쩍였다.

내가 친구 어머니의 김치를 아주 좋아하게 될 무렵, 친구는 은밀하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이건 우리 아버지가 참말로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너도 절대로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안돼.” 그의 비밀은 1980년 5월18일 광주에서 있었던 끔찍한 일에 대한 기억이었다. 광주 시내에 살았던 그는 총을 든 군인들이 군홧발로 안방까지 뛰어 들어왔으며, 그전에 그의 아버지는 용케 고등학생인 큰아들을 옥상 큰 빨간 ‘다라’ 안에 숨겨 놓는 것을 보았다고. 군인들은 청년들만 보이면 마구잡이로 끌고 갔다고.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온 식구가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고.

아마도 나는 그때 ‘기야?’ 대신 ‘왜’라고 물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군인들이 왜? 내 친구는 소리 죽여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이 말을 하면 잡혀갈 거래. 국민에게 총을 발포하라고 명령한 장본인이 대통령이던 시절이었으니, 내 친구의 두려움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해 봄의 진실이 세상에 밝혀지고, 피의자들이 인정한 사실이 재판 판결문에 똑똑히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두 눈으로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렸다. 1980년 5월에 내 친구와 같은 나이에 광주에 있었다는 이가 말했다. 그때 일을 말하면 집안이 망할 거라고 한 아버지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고. 그들은 의심했다. 과연 세상이 진실을 지켜줄 수 있는가를.

요즘 5·18민주화운동 망언들을 보면 허탈하다. 도대체 지난 30여년 동안 힘겹게 밝혀온 진실이 이리도 가벼운 것이었는가? 그들의 거짓을 망언으로만 규정하고 말 것인가? 그들을 진짜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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