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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들 상품이 아니겠는가. 훔치면 절도가 되고 소유하려면 구매해야 하니 책 또한 영락없이 상품이다. 그런데 책을 무료로 빌려주는 공공도서관이 있는 걸 보면 책은 다른 상품과는 좀 다른가 보다. 세상 사는 데 인간에게 필요한 물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개인에게 무료로 빌려주는 상품으론 책이 유일하다. 냄비와 옷을 거저 대여해주는 기관은 어디에도 없다. 

책도 상품인 한 다른 상품처럼 판매되고 구매되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곳을 책을 파는 가게, 즉 서점이라 부른다. 공산품에 비유하자면 책이 생산되는 곳이 출판사라면, 서점은 생산된 책이 판매를 위해 전시되는 상점이다. 서점이 있어야 생산된 상품인 책이 전시되고, 책이 전시되어야 소비자인 독자는 책을 고를 수 있다. 선택권은 서점의 소비자인 독자에게 있는 듯하다. 그러나 소비자의 선택권은 현실에서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엄청난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기차역과 백화점을 끼고 있는 영화관이 있다고 하자. 그 영화관에 10개나 되는 스크린이 있어도, 스크린 중 무려 8개를 한 영화가 독점하고 있다면 그 영화의 흥행은 보증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관객의 자유로운 선택은 이미 제한되어 있다. 새로운 쇼핑몰이 들어설 때마다 어김없이 매장을 확대하는 대형 체인 서점도 영화관 체인을 흉내 내고 있다.

몇 안되는 대형 서점 체인이 책과 소비자가 만나는 플랫폼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매장이 넓으니까 선택할 수 있는 책도 다양해 보인다. 매해 7200개가 넘는 출판사라는 공장에서 7만5000종이 넘는 책이라는 신상품이 출시된다. 하지만 정작 전국에 체인망을 갖고 있는 대형 서점에 7만5000종이 넘는 책이 빠짐없이 전시되지 않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대형 서점에는 책이 전시되는 장소인 매대를 구매한 출판사의 책이 주로 전시된다. 아는 사람은 아는 비밀, 대형 서점은 책이라는 상품이 아니라 책이 전시되는 장소, 이른바 매대를 생산자인 출판사에 파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러하니 대형 서점에서 소비자인 독자가 고를 수 있는 책의 폭은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대형 서점에는 판매된 매대를 관리하는 직원은 있지만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점원조차 없다.

작은 서점 혹은 독립 서점이라는 곳은 그래서 생겨났다. 힘든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책이 판매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 있는 대형 서점에서 제대로 전시되지 않는 상황, 잘 팔리는 책에 질식해 양서가 사라지는 현실이 아쉬워 용감한 사람들이 작은 서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독서인구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작은 서점은 다행스레 늘어 가고 있다.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에게 왜 서점을 열었는지, 서점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수원에 있는 작은 서점 ‘마그앤그래’의 운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고르는 일을 좋아하고, 그걸 권해주는 일을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열심히 읽어도 한 사람이 꼼꼼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란 한계가 있는데요. 저를 거쳐간 책들을 통해서 굉장히 여러 가지의 독서 인생을 살고 있는 기분입니다.” 서울 서촌 이상의 집 근처에 있는 ‘서촌 그 책방’의 운영자는 대형 서점과 달리 작은 서점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 생각한다. 작은 서점의 꽃은 독자들이 모여 함께 책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이다. “독서모임을 통해 아무데서도 말하지 못한 자신의 치부나 고민을 털어내고 살짝 눈물을 보일 때, 다달이 회원들의 표정이 밝아질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작은 서점에서는 책이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책을 읽고 지식을 공유하는 독자로 변신하는 마법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자본이 운영하는 서점과 달리 이러한 작은 서점은 자영업의 방식으로 보통 운영된다. 서점 운영자는 한국의 자영업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모든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굳이 묻지 못했고 굳이 서점 주인도 털어놓지 않은 서점업의 장사 내막을 궁금해하는 분을 위해 <출판하는 마음>이라는 책에 실린 작은 서점 주인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기본적으로 서점은 음식점이나 옷가게처럼 원가의 두세 배를 남기는 장사가 아니다. … 책 팔아서 남는 돈은 빤하고 매달 나가는 월세는 비싸다. … 가령 월세 50만원에 관리비 등 한 달 유지비 50만원, 인건비 100만원이라고 하면 매월 수익이 총 200만원은 발생해야 한다. 책을 팔아 월 200만원을 마련하려면 하루에 열여덟 권을 팔아야 가능하다. 책의 평균 정가를 1만5000원으로 잡았을 때, 공급률 75%에 받아서 한 권 팔면 3750원이 남는다.”

작은 서점에는 대자본이 운영하는 대형 서점의 현대식 시스템은 없다. 그 대신 단순 소비자가 독자로 변신하도록 돕는 사람, 책에는 단순한 상품 그 이상의 가치가 들어있다고 믿는 사람이 거기에 있다. 대전에 있는 한 작은 서점의 상호는 ‘You are what you read’이다.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책 읽는 사람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제 하나를 덧붙여야 한다. 우리는 책이라는 상품의 소비자도 될 수 있고, 책의 독자도 될 수 있다. 그런데 당신은 소비자입니까, 독자입니까? 아니면 책과 서점을 사진으로 찍기에 바쁜 인스타그래머입니까?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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