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치 칼럼

노무현 탈상’의 조건

opinionX 2011. 5. 23. 14:47
서해성|작가

공자는 틀렸다. 제자의 물음에 탈상은 삼년이면 족하다고 했거늘, 오늘 대중들은 비 퍼붓는 광장에서 그를 부르고 있다. 아직 그를 다 보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 DB> 

동학농민군은 탈상하는데 1백 년이 넘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공식적인 사과를 통해 이들의 신원을 회복시켜준 건 노무현 정권 때다. 제주 4·3사건은 탈상할 뻔했다가 현 정권 들어 재를 뿌리는 바람에 제상이 넘어지기 직전이다. 앞으로도 한동안 귀신들은 화약연기를 뒤집어쓴 채 한라산 중허리를 감돌아야 할 판이다.

광주항쟁은 숫제 재장례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다. 지속적 항쟁과정을 통해 민주사회의 ‘애국가’가 된 ‘산 자여, 따르라’는 노래마저 빼앗는 ‘관제화’ 강요와 3년 내리 대통령이 불참하는 등 국경일답지 않은 대우, 유네스코 문화유산등록과정에 모욕까지 더해진 까닭이다. 

새로 정부가 들어서면 광화문 네 거리에서 기념행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런 점에서 더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탈상에는 조건이 있다. 가해자가 있는 죽음은 더욱 그러하다. 상복을 벗자면 그만한 내력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상장을 떼어내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우고, 여인네들이 오늘도 머리를 빗질하고 나서게끔 하기 위해서는 안팎으로 매무새를 분명히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노무현은 어디쯤 가고 있는가. 그를 생각하면 어제가 오늘이다. 한국 민주사회는 처음으로 복고를 갖게 되었다. 민주정권 10년이 그러하지만, 낙서 한 줄을 옥에 가두는 늙은 야만이 그와 함께 살던 시대가 ‘태평성대’였음을 새삼 반추케 한다. 한낱 초짜 검사들마저 대통령과 대거리를 맘 놓고 하질 않았던가.

돌이켜보면 촛불이 꺼지자 곧 권력의 채찍은 노무현을 향했다. 우선 그 채찍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내야만 한다. 이것이 첫 번째 조건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의 차명계좌 운운은 그 연장선에 있다. 가해자들은 지금도 모욕과 망각을 교차해서 써먹고 있질 않은가.

노무현은 삶과 죽음을 통해 네 번 버림받았다. 먼저 스스로를 버려서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그는 달려갔다. 실패를 알면서 도전해간 정치인의 길이다. 

탄핵은 평민 출신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해내기가 얼마나 버거운지를 웅변해주었다. 집권 말기 집요하게 당한 굴욕은, 그를 마침내 부엉이 바위로 밀어 올렸다. 무엇보다 캄캄하게 버림 받은 건 그가 추진해온 정책들이 현 정부 들어 철저히 능멸당한 대목이다. 

과거사정리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이뤄내고자 한 화해와 평화는 매순간 계승해야 마땅한 것들이다.

민주정권을 이어가지 못한 결과 한국사회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맞닥뜨려야 했다. 그의 죽음은 ‘민주 10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치열한 토론, 그리고 정권 회복이야말로 탈상의 조건임을 명확하게 적시하고 있다. 덧붙여 도전과 책임, 희생과 서민적 풍모를 내뿜어온 노짱, 노간지의 독점은 탈상의 길을 더디게 할 뿐이라는 점도 명념해 두어야 한다.

한적한 시골마을 봉화의 부엉이바위는 이태째 설화적 힘으로 꿈틀대고 있다. 그 바위는 어둠을 찢는 소리로 외치고 있다. 그는 거기서 내려오지 않아도 좋다. 탈상이 끝나는 그날까지는.

소싯적 무덤으로 가는 장례행렬 악사 노릇을 했던 공자는 죽음이 지녀야 할 거룩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늘 그를 노래로 보내면서 다시 부른다. 산 자여, 따르라! 공자는 옳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