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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구 |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1961년 5·16 군사쿠데타 50주년을 맞아 다수의 보수 매체들은 박정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대체로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에는 별반 새로운 근거가 제시되고 있지 않다. 과거와 같이 경제성장과 자주국방의 공 정도가 제시될 뿐이다.

새로운 것이 있다면―물론 그것조차 별반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여론조사 정도가 있을 뿐이다. 여론조사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를 최고의 대통령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번 여론조사에서 좀 더 유심히 보았던 것은 박정희에 이어 노무현과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박정희 대통령을 바로 뒤따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이번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압도적인 긍정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과거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정희는 항상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제 압도적인 1위는 상대적인 1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는 박정희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의 박정희 평가가 그리 높지 않다는 데에 기인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흉상 철거를 촉구하는 시위 (출처: 경향신문 웹DB)

아마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많은 변화를 보일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기억이 흐려지고 때로는 역사의 현장에서 멀어짐에 따라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세력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항상 내세워왔던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이 일반 시민들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질 때 그들의 기득권과 정당성 역시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의 불안은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이 잊혀질 수도 있다는 바로 이 사실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기억을 수시로 불러낼 필요가 있다. 기억을 불러내지 않으면 시민들로부터 잊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억 불러내기에서 긍정적인 기억들만이 불러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불러내지지 않는 부정적인 기억들은 시민들로부터 점차 잊혀진다는 점이다. 박정희 통치의 당시보다 지금의 시점에서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기억이, 특히 선별되어 불러내진 기억은 신화가 되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사에서 분단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졌던 분단·반공·개발의 독재체제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그야말로 역사적 난제이다. 현재 우리가 서 있는 기반이 1948년으로부터 1987년에 이르도록 40여년에 걸쳐 전개되었던 이 같은 독재체제에 의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체제에서 구축된 기득권 세력들이 현재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의 긍정적인 기억들만을 불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와 미래사에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다. 이제까지의 민주화와 민주개혁 그리고 앞으로 복지와 남북 평화통일로 이어질 거대한 흐름이 그것이다. 이 후자의 흐름이 분단·반공·개발이란 전자의 흐름을 넘어설 수 있을 때, 그리고 이 후자가 전자의 긍정적인 측면까지도 흡수해냈을 때 박정희에 대한 평가도 비로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 우리는 과거의 신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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