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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전 일간지 기자

31년 전, 계엄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가 아무 죄도 없는 광주시민들을 살육했던 일을 두고 ‘북괴(북한)의 특수부대와 그 사주를 받은 불순세력이 저지른 폭동’이라는 주장이 지금도 제기되어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2011년 5월 12일자).

광주에서 그 때의 항쟁기록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기록으로 등재하고자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어느 조직에서 ‘광주사태는 북괴(북한)의 특수부대요원들이 침투하여 자행한 소요’일 뿐 공수부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펼치며 그들의 만행이라는 기록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광주사태’를 현장에서 직접 취재했던 필자는 당시의 몇 가지 상황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18일 오후 4시 정각, 금남로 횡단보도에 도열해 있던 1개 중대가량의 얼룩무늬 공수부대복장 군인들이 갑자기 시위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시민들에게 쏜살같이 내달려 진압봉으로 두들겨 패고 소총개머리판으로 내리치고 군화발질을 해댔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이때 택시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로 보이는 감색정장의 신랑과 예쁜 한복차림의 신부를 붙잡아 마구잡이로 두들겨 팼던 공수부대복장의 군인들, 길을 가다 붙잡혀 난도질당한 20대 여자를 군용트럭위에 올려놓고 ‘보기좋다’며 희롱했던 공수부대복장의 군인들, 북동 276번지 건물 2층에 있는 동아일보 광주지사에 착검한 M16 소총을 앞으로 내밀고 들어와 업무를 보고 있던 총무와 배달학생을 실신되도록 두들겨 팬 후 끌고 갔던 공수부대복장의 군인들이 북한의 특수부대요원들이라는 말입니까? 또한 이 길에서 두들겨 맞고 짓밟히고 찔린 채 피투성이 상태로 붙잡혀 2대의 트럭에 실려 있던 시민들을 어디론가 끌고 간 공수부대 복장군인들이 북한의 특수부대요원들이란 말입니까?

19일 오후 2시경 금남로 2가와 3가 사이에서 메가폰을 들고 길 양편 건물을 향해 “커튼을 쳐라, 밖을 내다보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쏴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소리쳤던 검정베레모에 별 하나를 단 장군이 북한 특수부대소속 장성이었다는 말입니까? 20일 오전 10시20분쯤 가톨릭센터 앞 금남로3가 길 위에서 남녀 30여명의 젊은이들을 팬티와 브래지어 차림의 알몸 상태로 만들어 놓고 혹심한 기합을 줬던 공수부대복장의 군인들이 북한의 특수부대 요원들이라는 말입니까? 21일 오후 7시쯤 장갑차를 선두로 시내에서 철수하면서 학동 길 양쪽 주택가에 무차별 총격을 가한 공수부대 복장 군인들이 북한의 특수부대요원들이라는 말입니까?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들이 공수부대와 대치한 가운데 전두환 퇴진’을 외치고 있다. (출처: 경향신문 웹DB)


근래 들어<수사기록상으로 보는 12·12와 5·18>,<공수부대의 광주사태>,<전두환과 광주혁명>,<전두환 재심 프로젝트>,<화려한 5·18사기극>이라는 책들을 통해 5·18살육은 공수부대소행이 아니라 ‘간첩의 지령을 받은 불순세력의 소요’, ‘여순반란사건에 뿌리를 둔 공산혁명, 북괴의 특수부대요원과 이들의 사주를 받은 불순세력의 반란’이라는 주장들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제기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화려한 5·18사기극>에 실린 사례를 들어봅시다. 이 책에 실려있는 증언들을 보면 모두가 북한의 특수부대요원들이 마음대로 휴전선을 넘나들고, 해안선으로 상륙하고, 땅굴을 타고 제집처럼 대한민국에 들락거리며 5·18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최고사령관 명령만 있으면 인민군은 언제든지 휴전선을 넘어올 수 있었다’는 이 책 내용대로라면 대한민국은 이미 북한군의 무력으로 흡수되어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당시 계엄사령관으로 대한민국의 국방 및 치안을 총체적으로 담당하셨던 이희성장군은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무서운 음모요 황당한 일입니다. 심지어 필자가 5·18관련 저서를 통해 5월22일부터 나타난 ‘복면부대’에 대해 당시 ‘계엄사나 정보기관에서 투입시킨 프락치일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한 대목에 대해 ‘시민군에 가까운 김영택 기자도 복면부대가 북괴의 특수요원임을 시사하고 있다’고 인터넷에 올리고 <화려한 5·18사기극>에 실어놓고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이에 필자는 당시 상황을 두고 공개 토론을 제의합니다. 이제 가해자들께서는 억울하게 당한 광주시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을 가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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