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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신문사에 입사했다. 몇 달 후 동기들과 월급 이야기를 하다 내 급여가 조금 적다는 걸 알게 됐다. 불쾌했다. 담당부서에 물어봤더니, 병역을 필한 사람에 대해 호봉을 가산해 준다고 했다. 마음이 바뀌었다. 2년 먼저 회사에 들어왔으니 ‘합리적 차별’이라 생각했다. 경향신문 DB
1999년 헌법재판소 취재를 담당할 때다. 군 가산점을 규정한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 8조 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헌재는 “가산점 제도는 제대군인의 취업기회를 특혜적으로 보장하고, 그만큼 제대군인이 아닌 사람의 취업기회를 잠식하는 제도”라고 판단했다. “공직수행능력과 아무런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는 성별 등을 기준으로 여성과 장애인 등의 사회진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므로 정책수단으로서의 합리성을 상실한 것”이라고도 했다. 요컨대 ‘합리적 차별’이 아니란 얘기였다.
2011년, 군 가산점이 다시 논란이다. 남성들은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여성 총리에 대법관, 장군, 전투기 조종사가 나올 만큼 여성들이 ‘드세져’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한다는 것이다. 사법시험과 행정·외무고시에서 여성의 합격률이 높은 것은 뉴스 축에 끼지도 못한다. 남성들은 불만일 것이다. 푸른 청춘에 머리 깎고 병영에 묶인 것만도 서러운데, 또래 여성들은 2~3년 먼저 사회 나가 돈 벌고 때로는 윗자리에 앉아 ‘보스’가 되니까. 그러나 가슴으로 느끼는 것과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달라야 한다. 그런 게 이성이고 상식이다.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병역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국가·지자체 공무원과 교원 등의 임용시험에서 본인이 얻은 점수의 2.5% 한도 내에서 가산점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헌으로 결정된 제대군인지원법과 다른 점은 채용 횟수에 제한을 두고, 합격자가 전체의 20%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대군인 가운데 공직임용 시험을 치르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이 중에서 가산점 혜택을 받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팀이 여성가족부의 의뢰로 작성한 ‘군복무자에 대한 합리적 보상제도’ 보고서를 보자. 김 교수팀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해마다 25만명가량이 군에서 제대한다고 가정할 때, 이 중 새로운 가산점제 덕에 합격하는 비율은 7급 공채 0.08%, 9급 공채 0.2%일 것으로 추산됐다. 군 가산점제가 상징적 조치일 수는 있으나 실질적 조치는 아니란 얘기다.
의무복무자들의 박탈감을 달래주고 싶다면, 제대군인 모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같은 방안은 이미 여러 곳에서 내놓았다. 제대 후 취업지원, 사회적응기간 생계보조를 위한 ‘전역수당’ 지급, 대학에 복학하는 사람들에 대한 학자금 저리 융자 등이 그것이다. 의무복무하는 사병들에 대해선 급여 현실화, 건강보험금의 국가 부담, 국민연금 혜택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군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들이다. 군 가산점제가 위헌으로 결정되기 전인 1991년, 왼팔에 장애가 있던 정모씨는 총무처(현 행정안전부) 주관 7급 행정직 공채에서 82.22점을 받았다. 당당한 차석이었다. 군 가산점을 적용한 결과는 달랐다. 78.33점을 받은 군필자가 가산점을 더해 83.33점으로 정씨를 제쳤다. 정씨는 탈락했다.
새로운 가산점제 아래선 이런 사태가 없을까. 김선택 교수팀은 2009년 7급 공채(일반행정직) 결과에 가산점제를 적용해봤다. 필기시험 합격자 363명 중 47명(12.9%)의 당락이 바뀌었다. 남성 합격자는 47명 늘고, 여성 합격자는 그만큼 줄었다. 9급 공채는 더했다. 필기 합격자 339명 중 67명(19.8%)의 운명이 달라졌다. 진입장벽을 쌓아 취업기회 자체를 봉쇄하는 것은 합리적 차별이 아니다.
여전히 정체 모를 박탈감이나 분노가 가시지 않는 남성들이 있다면, 묻고 싶다. 당신의 분노는 어디를 향하는 게 옳은가. 절에서 고시 공부하느라 입영통지서 못 받고 면제된 사람이나 무대에서 멀쩡하게 춤추다 공익근무요원 가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여성이나 장애인인가.
<시크릿 가든>의 재벌 2세 대신 진짜 재벌의 아들, 장관의 아들, 장군의 아들이 백령도를 지킬 때 시민의 삶은 더 안전하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애꿎은 이들에게서 직업선택의 자유를 빼앗으려 하지 말고 ‘신의 아들들’부터 군에 보내라. 그리고 제대군인을 돕고 싶다면, 공짜로는 안된다. 돈 쓸 생각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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