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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드디어 여의도에 입성했다. 구제가 어려운 민주당의 현실을 고려할 때 야권의 재생을 위해 그의 새 정치가 절실하다. 그러나 그의 국회 입성이 손뼉 쳐서 반겨지지가 않는다. 그가 여의도에 입성하는 날, 진보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이 꿈에 나타나 놀라서 잠을 깼다. 그는 가슴과 등에 칼을 꽂고 피를 흘리며 나에게 기어오고 있었다.


상계동 돌며 인사하는 안철수 의원 (경향DB)


진보신당 탈당 등으로 비판을 받고 있지만 노 전 의원은 진보의 불모지에서 진보 정당을 뿌리 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왔고 진보 정당이 배출한 몇 안되는 대중정치인이다. 특히 모범적인 지역구 활동으로 진보정당 후보로는 드물게 지역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삼성과 국가권력의 유착을 폭로한 죄로 금배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나는 안 의원이 평소 공익적 리더십을 실천해왔고 재벌을 비판해왔으며 새로운 정치를 주장하고 있는 만큼 노 전 의원에 대한 부당한 판결에 항의하는 뜻으로 후보를 내지 말고 선거를 보이콧하자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을 설득하고 나설 줄 알았다. 그러나 “기회는 이때”라는 듯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재벌과 국가권력에 의해 가슴에 비수를 맞은 노 전 의원의 등에 다시 한번 칼을 꽂은 것이다. 꿈속에 노 전 의원이 두 곳에 칼이 꼽혀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였으리라. 물론 안 의원은 새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원내 진출이 절실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새 정치가 수단과 과정은 어찌되었든 목적이 정의로우면 된다는 낡은 결과지상주의라면 그건 낡은 정치일 뿐이다. 재벌과 국가권력에 의해 치명상을 입은 진보 정당을 부축해주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비수로 찔러 그 시체를 밟고 일어서는 것이 새 정치라면 그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정치가 아니다. 영세상인들의 영역까지 침입해 밥줄을 끊는 재벌과 무엇이 다른가?


안철수는 안철수고 문제는 노회찬이다. 노 전 의원은 사면이 되기 전엔 공직 출마가 불가능하다. 설사 사면을 받더라도 지역구를 옮기거나 안 의원이 대통령이라도 돼서 지금의 지역구를 떠나지 않는 한, 아니면 국회의원을 포기하고 구청장 등 다른 공직을 겨냥하지 않는 한, 안 의원과 싸워 이겨야 한다. 이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진보정의당, 그리고 진보 정당의 미래를 위해 전념해야 한다. 노 전 의원이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은 안철수를 따라가든지, 아니면 민주당을 따라가든지, 자유주의 정당에 들어가 그 내부에서 진보 블록을 구성하는 것이다. 현재 진보정의당의 다수파는 진보 정당과는 거리가 멀고 유시민을 따르던 국민참여당 계열이고 이에 노 전 의원과 심상정 의원 등이 얹혀 있는 형국이라는 점에서 이는 가능한 시나리오다. 게다가 민주당행을 강하게 거부했던 유시민 전 장관이 당을 떠난 만큼 큰 장애가 없어진 셈이다. 사실 이미 국민참여당 계열의 강동원 의원은 진보정의당을 탈당했고 안철수 쪽으로 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노 전 의원은 최근 건전한 진보 정당의 2단계 창당을 이야기하는 등 이 같은 선택과는 일단 거리를 두고 있다.


(경향DB)


다른 선택은 노회찬, 심상정과 같은 진보 세력과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 계열이 동거하는 상황을 끝내고 당을 해체하는 것이다. 국민참여당 계열은 이념이 비슷한 안철수당이나 민주당으로 가고, 노 전 의원 등은 진보신당과 진보 정당의 혁신을 위해 구성된 노동현장의 노동자정당추진회의 등과 함께 (반미와 통일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종북주의 등의 비판을 받아온 통합진보당과 달리) 노동과 복지 문제 등에 역점을 둔 21세기형 진보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탈당을 둘러싼 감정적 앙금 때문에 진보신당과의 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 통합진보당 사태가 보여주듯 무리한 통합은 득보다 실이 많다. 그러나 각개약진은 공멸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리스 좌파연합 등 다양한 실험을 참고해 이들 진보정치 세력의 연합조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노 전 의원이 할 역할이 있을 것이며, 그 첫걸음은 진보신당 탈당에 대해 사과 등으로 앙금을 푸는 것이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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