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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내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두 귀로 들은 이야기가 언론에서 엉뚱하게 와전되고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일단 내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몇 번이고 곱씹어보았을 것이다. 내 기억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든 순간,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친구들에게 넋두리를 했을 것이다. 몇몇 친구들은 당장 언론사에 연락하라고 했을 것이고, 또 다른 친구들은 괜히 정치판에 끼어들어 곤욕을 치르지 말고 그냥 넘어가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9월 초순, 정준길 전 새누리당 공보위원이 안철수 교수의 대변인 격인 금태섭 변호사에게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나오면 죽는다’는 내용의 협박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선 정국이 시끄러웠다. 새누리당과 안철수 교수 측의 공방은 정준길 전 공보위원을 태웠다는 택시기사의 증언이 나오고, 정준길 전 공보위원이 이를 시인하면서 일단락됐다. 불과 10여일 전의 일인데, 오래전 이야기 같다. 88올림픽 때 나붙었던 ‘우리의 1년은 세계의 10년’이란 슬로건이 여전히 새삼스럽다.
지나간 일을 다시 들춰보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말바꾸기를 꼬집으려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의 자질이나 구시대적 작태를 따지고 싶지도 않다. 이번 ‘불출마 협박 논란’에서 ‘살아 있는 시민’의 역할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택시기사의 증언이 없었다면 진실은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긴장 관계를 되살려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직 문제의 본질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번 논란의 중심에 인권 문제가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같이 살자' 출판기념회 여는 송호창 의원 (경향신문DB)
한 번 더 상상해보자. 바로 앞에 앉아 있는 택시기사를 ‘사람’으로 보았다면 그런 전화를 걸 수 있었을까. 술에 취해 핸들을 잡거나, 졸면서 전방을 주시하는 택시기사는 없다. 운행 중인 택시기사는 감각과 의식이 누구보다 살아 있다. 더구나 아침이었다. 정준길 전 공보위원은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상태라고 했지만, 자신의 통화 내용에 대해서는 대체로 시인했을 만큼 기억력이 정상적이었다. 그런데도 바로 앞에 앉아 있는 택시기사의 존재를 왜 무시했던 것일까. 택시기사가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있고, 또 그것을 기억할 수 있으며, 그 기억을 토대로 발언을 할 수도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왜 외면했던 것일까. 혹시 택시기사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사회학자 이진경씨는 최근 펴낸 자신의 칼럼집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에서 우리 시대를 ‘뻔뻔함의 체제’라고 규정한다. 정치인이나 관료, 기업가 등 지배적 지위를 가진 자들이 특정한 이권이나 이익을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지배체제라는 것이다. 포함·배려의 정치가 아니고 배제·추방의 정치가 이 지배체제의 엔진이다. 위선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도처에 배제·추방의 경계선이 그어지고 있다. 강남과 강북을 가로지르는 경계는 한강이 아니고 선민의식이다. 승자독식 구조가 양산하고 있는 비정규직, 청년실업, 독거노인, 외국인 노동자 등이 배제·추방의 구체적 증거다.
유력 대선 주자 캠프 사이에서 오간 불출마 협박 논란에는 인권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사람이 사람이다. 가진 자, 힘 있는 자, 배운 자만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사회처럼 두려운 사회는 없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사회처럼 야만적 사회는 없다. 인간은 인권을 발명하면서 ‘제2의 탄생’을 경험했다. 이제 우리는 상호의존성, 복합성, 다양성, 지속성과 같은 녹색가치를 우선하면서 ‘제3의 탄생’을 지향하고 있다.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녹색세상은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 녹색세상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사람이다. 그래야 나도 내 앞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내 곁에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생명이다. 그래야 지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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