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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 |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지난 18일은 만주사변의 시발점인 류타오후(柳條湖) 사건 81주년이었다. 일본 관동군이 대륙 진출을 위해 만철 선로를 폭파하고 이를 중국 측 소행이라 발표한 후 보복을 이유로 만주 침략을 개시한 날이다. 중국인으로서는 일본에 의해 만주국이란 괴뢰정권이 수립되어 반식민지 지배상태로 들어가게 된 국치일이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으로 연일 뜨겁게 달아오르던 반일 시위는 이날 정점을 찍었다. 시위는 100개 도시로 확산되었고 류타오후에서 가까운 선양 소재 일본 총영사관 건물의 일부가 파손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차기 대권을 접수하느라 분주한 시진핑 국가부주석은 패네타 미 국방장관과 접견하면서 일본 정부가 센카쿠를 국유화한 행위는 전쟁 가해자로서의 과거를 부정하는 동시에 전후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의 국제법적 효력에 공공연히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만주사변이 특별히 조명을 받은 까닭은 영토문제가 역사문제와 연결되어 인식되는 데 있다. 한국인의 독도가 그렇듯이 중국인에게 댜오위다오는 단순한 영유권 문제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주권침탈의 상징이다. 개념적으로 한국의 독도는 일본의 다케시마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중국의 댜오위다오도 일본의 센카쿠와 다르다. 


중국유학생 일본대사관 앞 집회 (출처: 경향DB)


일본은 이 점을 외면하고 있다. 역사문제와 영토문제를 분리한 후, 이 섬들이 제국주의 침탈과 관련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조사하고 판단하자는 입장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중국과 한국의 반일 시위에 대해서 감정을 자제하고 이성적으로 대응해주길 촉구하는 발언을 일관되게 반복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감정에 대한 이해이다. 우리는 이성과 감정의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은 감정적,” 혹은 “중국 대중은 감정적”이란 표현 속에는 이성에 의해 감정을 추슬러야 한다는 즉, 머리로 마음을 다스리자는 합리주의적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최근 여러 연구성과들에 따르면 인간의 합리적 행동은 머리와 마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기본적으로 스피노자의 입장이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감정(emotion)을 표정과 목소리 등 몸으로 표출되는 행위로서의 정서(affect)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지각으로서의 느낌(feeling)으로 구분한다. 인간은 대부분의 대상에 대해 정서를 갖고 반응하며 뒤이어 느낌을 나타낸다. 느낌이란 정서적 절차에 따라 동요하는 신체를 특정하게 지각하고 관념하는 것이다. 즉, 특정한 시공간과 마주치면서 나타나는 동정, 당혹, 가책, 동경 등 정서적 변화는 그에 수반하는 자기인식과 결합되어 느낌으로 발현된다. 감정과 이성은 서로 조합되어 있다. 


중국인의 반일 시위는 우려스러울 정도로 과격하다. 중국 정부도 연일 강경한 대응을 쏟아붓고 있다. 바다에서는 순시선의 대치가 진행되고 경제보복 조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이면에는 물론 중국 정부가 반일감정에 편승하여 국내정치적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다. 또한 미·중 간 지정학적 경쟁이 가시화되는 속에서 미국의 최측근 동맹국인 일본을 때리는 전략적 의도도 담겨 있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감정이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댜오위다오나 독도란 언어가 주는 정서적 신호와 이를 지각하는 느낌은 한·중·일 사이에 크게 다르기 때문에 중·일관계나 한·일관계는 감정이 공유되지 않은 불안정한 관계이다. 일본이 이성과 감정의 이분법으로 섬들을 바라보며 상대에게 감정을 이성으로 다스리라는 주문을 지속하는 한 일본 외교는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배와 침탈에 대한 정서가 손상되고 느낌이 없는 상태에서 지적으로 외교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정은 역사를 갖고 있고, 민족 단위의 집단적 정체성을 구성해 왔다. 그러나 감정은 진화한다. 동북아의 진정한 협력은 경제적 손익, 안보적 이해득실의 계산을 넘어서 과거에 대한 공감의 감정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감정의 국제정치를 실천하는 데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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