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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표적 관광도시 하면 하이델베르크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중앙역 옆에 자리한 12층 높이 인쇄미디어 아카데미 건물과 로봇 형태의 철제 조형물을 보고 이곳이 인쇄도시임을 알아채게 된다. 


독일 인쇄기 산업은 전 세계 시장의 약 70%를 점유한다. 도시 이름과 같은 하이델베르크 인쇄기는 세계시장의 40%를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1850년 교회의 종을 만들기 위한 주물공장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1905년 인쇄기를 만들기 시작해 2011년 현재 3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경향DB)


현재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인쇄업은 오늘날 정보통신기술(ICT)과 스마트폰의 발전에 밀려 사양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경기침체와 종이 인쇄의 위축으로 어느 정도 이런 인식이 정당시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쇄기 제조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관계다.


독일에는 약 1만3000개의 인쇄 관련업체가 있는데 그 중 95% 이상이 종업원 수 50명 미만의 소기업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인쇄산업의 전체 규모는 줄어들고 있지만 그들 간에 유지되는 협력관계는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인쇄할 때 가장 중요한 종이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다양한 기계적 장치 개발에 집중한다. 오래전부터 생산되지 않는 기계일지라도 수리를 할 수 있는 것은 협력 중소기업들이 수십년 전 부품일지라도 공급해주기에 가능하다. 아울러 디지털과 인쇄물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도 협력 중소업체가 개발한 여러 첨단기술을 대기업이 융합하고 있다.


정밀 인쇄기는 자동차처럼 수만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아무리 세계적인 기업일지라도 모든 부품을 직접 생산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중소기업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그들은 오랫동안 하도급 관계로 상생하고 있지만 특정 대기업에만 납품을 강요하는 전속거래를 강요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독일의 인쇄기 대기업이 서로 경쟁하고 세계 1, 2, 3위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 바탕에는 몇 십년씩 거래한 수천개의 하도급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자리한다.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강 위에 평온하게 자리잡은 하이델베르크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중세도시 관광지의 면모만큼이나 ‘느리지만 꼼꼼함’을 바탕으로 한 독일적 동반성장의 정신을 찾을 수 있다.



김영우 | 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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