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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공황상태에 처한 대한민국. 메르스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질병이었음에도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국민을 분노하게 한다. ‘세월호’의 재현이다. 그런데 메르스는 다가올 더 큰 전염병의 서막에 불과하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에볼라, 사스, 그리고 에이즈. 공통점은 ‘인수공통 전염병’이라는 점이다. 많은 질병들은 ‘종간장벽’이라는 것이 있어서, 예컨대 인간이 걸리는 질병과 여우가 걸리는 질병이 따로 있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간 진행된 막대한 생태계 파괴로 이 종간장벽이 무너지고 전에 없던 많은 인수공통 전염병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새로 생겨난 질병의 75%는 인수공통 전염병이었다. 자연에 의해 보호되었던 종간장벽 속 안전했던 영역들이 점점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2002년에 등장해 8개월 동안 30개국에서 8100여명의 환자를 발생시키고 755명을 숨지게 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스’의 원인은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로서 야생 사향고양이에게 살던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불러오게 된 경우이다. 중국 광둥성의 식용 야생동물시장에서 거래되는 사향고양이, 너구리, 흰족제비 등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채취해 사스 바이러스와 비교한 결과 유전적으로 99.8% 동일하게 나타났다. 야생동물을 식용으로 이용한 인간의 욕망이 사스의 원인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중동판 사스’로 불리는 메르스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의 한 종류이다. 원인으로 낙타가 지목되지만 낙타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것은 박쥐라는 연구도 있다. 뜨거운 사막에 사는 낙타가 어둡고 습한 곳에 서식하는 박쥐와 어떻게 만났을까? 박쥐의 서식지가 파괴되자 먹을 것을 찾으러 인간의 마을까지 접근하면서 낙타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생태계 파괴가 메르스의 원인인 것이다. 에이즈는 원숭이나 침팬지를 사냥해 먹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볼라 역시 박쥐, 설치류, 유인원 등이 바이러스의 숙주일 것으로 보고된다.

7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메르스 음성 판정을 받은 낙타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야생동물과 인간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 건강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과 자본주의는 이 거리를 자꾸 좁히고 있다. 외국의 야생동물을 닥치는 대로 수입해 애완동물 시장에 ‘희귀 야생동물’로 유통시키고, 각종 동물을 만지고 주무르는 체험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업자들이 ‘동물 체험’ ‘생태 교육’이라는 이름을 버젓이 사용하며 사막여우, 라쿤, 스컹크, 아르마딜로, 프레리도그, 친칠라, 왈라비, 거북, 각종 뱀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백화점, 마트,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데리고 다니며 아이들이 만져보게 하는 사업을 벌인다. 하루 종일 자기 몸을 수백명의 인간들이 만지는 학대를 당해야 하는 동물들의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아이들이 각종 인수공통전염병의 가능성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수입되는 동물 중엔 에볼라의 매개동물로 지목된 과일박쥐도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많은 동물이 국경을 넘을 때 대부분 방역없이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메르스 감염 방지를 위해 낙타와의 접촉을 피하라더니 정부는 정작 낙타가 수입될 때 제대로 된 검역조차 하지 않았다. 장하나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난 5년간 수입된 4만6000여마리의 야생동물 중 제대로 된 검역절차를 거친 동물은 단 2마리에 불과합니다”라며 “오타가 아닙니다. 정말로 단 두 마리입니다”라고 적었다. 수입 야생동물 검역을 강화하기 위해 장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야생생물 보호·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은 그래서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야생동물을 무분별하게 전시하거나 각종 ‘체험’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강한 규제가 절실히 요구된다. 메르스는 야생동물을 함부로 이용해 온 인간의 욕망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다.


황윤 |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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