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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그제 한시적이긴 하지만 전기요금을 인하하는 시책을 내놓았다. 주택용은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누진제 4구간(월 301~400kwh)에 3구간(월 201~300kwh) 요금을 적용하고, 산업용은 8월부터 1년간 토요일 중부하 요금이 적용되는 14시간 중 12시간을 경부하 요금으로 돌린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전기료 부담이 4인 가구당 월평균 8368원, 중소업체당 연평균 437만원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서민·중산층과 중소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려는 뜻이야 좋지만 전기료 인하는 느닷없고 의아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국가 에너지정책의 기본 방향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조치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1인당 전력 소비를 감안할 때 에너지정책의 성패는 수요관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류보다 싸고 원가보다 낮게 책정된 전기요금 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정부가 안고 있는 큰 숙제 가운데 하나다. 수요관리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정책 목표와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를 개선한다는 정책 과제는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도 있는 내용이다. 전기료 인하는 이런 에너지정책의 기조를 뒤흔들어 뒤죽박죽으로 만들 수 있다.

소득분위별 소득대비 전기요금 비중 (출처 : 경향DB)


더욱이 여름철 냉방 수요가 급증하는 기간을 겨냥해 전기요금을 인하한 것은 피크전력 관리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여름철이면 실내 냉방온도 제한, 개문냉방 영업금지, 피크시간 전기요금 할증 등 강도 높은 수요관리 정책을 시행했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전기·가스 요금에 유가 절감분이 즉각 반영되도록 하라”는 지난해 12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어불성설이다. 하계피크를 끌어올려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빌미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환경단체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세우면서 지난해 0.5%에 불과하던 전기 소비 증가율을 4.3%로 대폭 늘려잡고 2029년까지 원자력발전소 13기, 석탄화력발전소 27기를 증설하겠다고 밝힌 것이 그런 의심을 키운다.

전기요금은 국가 에너지 대계 차원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다. 전기요금이 싼 것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다. 유류보다 싼 전기요금이 산업과 농업, 가정 전반에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전력화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에너지신산업이나 재생에너지산업 발전의 기회도 막는다. 2020년 이후 신기후체제 마련을 위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국가 에너지 대계와 정부 정책, 시민의 자발적 절전 노력과 배치되는 이번 전기요금 인하를 납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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