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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 끝에 서설처럼 눈이 내렸다. 덮인 듯 만 듯해서 땅이 얼핏 엿보이는 저 눈은 아마도 올겨울이 보내는 마지막 작별인사리라. 아침 해가 돋으면 땅을 적실 물기 한 점 안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갈 운명의 마지막 눈.

겨울의 기억을 좀 더 새기고 음미하고자 빗자루를 찾아보았다. 언 땅 위의 눈을 싸리비로 쓸 때 나는 소리와 감촉은 머리끝까지 시원해진다는 걸 내 몸은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싸리비는 며칠 전 어머니 49재 행사 치를 때 아궁이로 들어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따뜻한 봄기운이 물씬 나는 때라 닳아서 몽당해진 싸리비를 누군가가 아궁이에 넣어버렸나 보다.

잠시 망설이다가 낫을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눈이야 더 오지 않더라도 농부 집에 마당비 하나 없으면 허전하다. 자연재배 농사만 해 온 우리 집에 철물점에서 이천원이면 살 수 있는 플라스틱 비를 들일 수도 없다. 읍내는 물론 웬만한 농가에도 마당 구석에 사시사철 파란 하늘색으로 세워져 있는 플라스틱 마당비를 볼 때면 공장장의 어설픈 자연 흉내내기 짝퉁 상술이 떠오른다.

싸리비건 수수비건 빗자루는 밑동이 잘려 비로 묶여지면 옅은 갈색을 띠다가 점점 황회색으로 변해간다. 그러고는 흙색이 되어 수명을 다하는 법이다. 모든 자연물이 그렇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작년에도 싸리비를 만들면서 뒷산을 여기저기 쏘다녀야 했는데 비로 맬 만한 싸리나무가 점점 더 찾기 어려워졌다.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길도 없어지듯이 사람들이 찾지 않으니 더 이상 자연도 싸리나무를 만들지 않나보다. 생명력이 강하고 생나무를 땔감으로 해도 잘 탈뿐더러 연기조차 나지 않아서 지난날 해방공간에서 산사람(빨갱이)들이 애용했다는 싸리나무는 온 산에 널려 있었다.

똑바로 자라서 곧으면서도 중간쯤부터는 곁가지가 길게 뻗고 끝 부위가 오목한 싸리나무라야 빗자루 매기가 좋은데 마구잡이로 휘어졌거나 나무 중간이 비틀어져 뭉툭한 것들만 눈에 띄었다.

어릴 때 아버지 뒤를 쫓아 늦가을이면 뒷산에 가서는 소쿠리나 채반을 만들 싸리나무를 한 짐씩 해 오던 추억이 아련하다. 쇠죽 끓이는 가마솥에다 긴 싸리를 가지런히 휘어 넣고 살짝 삶아서 건져서는 찬물에 급히 식히면 껍질이 쑥쑥 잘 벗겨진다.

껍질이 벗겨지면 싸리나무의 속살이 새하얗게 드러난다. 어둑해지는 저녁 무렵에는 그것이 더 뚜렷하던 기억이다. 껍질을 벗겨내서는 다발로 묶어 반듯하게 편 뒤 응달에서 꼽꼽하게 말린다. 바짝 말라버리면 작업하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싸리나무 생활용품들을 다 만들고 나서 남겨진 못생긴 자투리로 싸리비를 맸는데 이제는 빗자루 맬 싸리마저 구하기 어려운 처지다.

어렵사리 싸리비 두 개를 만들었을 때는 응달진 곳에만 눈이 조금 남아 있고 다 녹아버렸다. 쓸고 말고 할 눈이 없었고 동편에 떠오른 햇살만 생뚱하다. 눈과 해가 공모하여 내가 싸리비를 만들어 쓸어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기로 한 게로구나. 자연도 이제는 그만한 아량조차 베풀지 않는다.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길도 없애고 찾지 않는다고 싸리나무도 안 만들더니 사람이 점점 강퍅히 변하니 자연마저 야박해지는가 보다.


싸리비 하나를 들고 노부부가 귀촌해 살고 있는 윗집으로 올라가 선물로 드렸다. 싸리비를 보더니 반색하는 아저씨가 장가갈 때 얘기를 하셨다. 사주단자를 신부 집에 보낼 때 싸리나무를 두 토막 같이 보낸다는 것이었다. 장가를 ‘가는’ 것이니 사돈께서 회초리 삼아 잘 가르쳐 달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 맞다. 사주단자 보내고 하는 것이 사라지니까 싸리나무가 사라지는구나. 환경파괴는 산과 강, 공기나 지하수를 해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얼과 넋을 잃는 것과 맥이 같은 것이로구나.


전희식 | 농부·‘똥꽃’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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