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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베를린의 한 연구소에서 클라우스 퇴퍼 박사와 마주 앉았다. 퇴퍼 박사는 헬무트 콜 정부에서 연방환경부 장관을 지냈고, 1998년부터는 유엔 사무부총장과 유엔환경프로그램(UNEP) 위원장을 지냈으며, 기민당 소속 독일 연방하원의원으로 10년 가까이 일한, 환경과 지속가능성 분야의 거물이다. 그러나 그의 경력에서 무엇보다 내 호기심을 잡아끈 것은 독일 원자력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점이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태 이후 한국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설치했고 독일은 원자력윤리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2021년까지 독일 내의 모든 원전을 폐쇄하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것을 건의했고, 얼마 후 독일 정부는 실제로 원전 폐쇄와 에너지 전환을 결정했다.

불과 석달 전 세월호 참사의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한 나는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원자력의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건의한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먼저 궁금한 것은 위원회의 이름이었다. 우리는 ‘안전’ 위원회인데 왜 당신들은 ‘윤리’ 위원회인가?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원자력을 효율성의 관점에서 바라봐도 되는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했다. 원전 폐기물의 부담을 후손들에게 떠넘기는 세대 간 정의의 문제를 고려할 때, 이것은 무엇보다 ‘윤리’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원자력은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는 절대적 윤리의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원자력은 정의의 문제라는 것이다.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경제성을 외면할 수 없지 않나? 독일 기업들의 부담은 어떻게 할 것인가? “원자력이 가장 값싼 에너지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독일은 오래전부터 이 분야에 투자해왔기 때문에 이제 독일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용은 10년 전에 예측했던 것에 비해 9분의 1로 떨어졌다.” 그들이 얻은 것은 정의라는 명분만이 아니었다. 장기적인 연구와 투자를 통해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최강자가 되었다. 독일연방환경부에 따르면 2012년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고용 인원은 38만명이고, 2030년이 되면 5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의와 실리를 모두 얻은 것이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 “에너지 전환은 사회모델의 전환을 가져온다. 원자력은 몇 개의 독과점 기업이 생산할 수밖에 없지만, 재생에너지는 중소기업이나 개인도 생산할 수 있다. 독일에는 800개 이상의 에너지 협동조합이 활동 중이다.” 지난 대선의 화두였던 경제민주화의 원조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얘기할 때마다 갈등이 따라다닌다. 기존 대기업한테 활동영역을 줄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일 아닌가. 그런데 에너지 전환은 자연스럽게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정의와 실리, 거기에 갈등 없는 사회모델의 전환까지 이룬다면 이거야말로 창조경제 아니겠는가?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등 정당·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결정한 27일 서울 세종로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명연장 결정 무효와 원자력안전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후쿠시마를 겪었던 일본을 보자. 사태 직후 한때 ‘원전 제로’를 표방했던 일본은 이제 경제성장이라는 명분하에 원전 재가동을 추진 중이다. 일본 정부는 원전 재가동이 아베노믹스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선전하고, 장기 불황에 지친 국민들은 후쿠시마의 기억과 경제성장이라는 유혹 사이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중국의 원전은 중국 동남해안, 그러니까 우리의 서해 건너편에 집중되어 있다. 이미 건설된 원전과 건설 중인 원전, 계획되어 있는 원전까지 합치면 200기에 가깝다. 중국은 동시에 신재생에너지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아 태양광 분야에서 국제적인 강자이다. 만약 후쿠시마 같은 일이 중국에서 벌어진다면 방사능은 편서풍을 타고 고스란히 한국으로 날아올 것이다. 그럼 우리는 중국 원전에 대해 왈가왈부할 명분이 있는가? 우리도 원전을 늘리는 판에 그런 명분이 있을 리 없다.

나는 원자력 기술 그 자체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할 말도 없다. 그러나 원전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우리가 선박 기술을 몰라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이 아니듯이, 문제는 항상 그 기술을 운용하는 사람과 조직, 그리고 사회의 둔감성 때문에 일어난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 결정을 보자. 전 국민의 생명과 건강, 후손들의 미래까지 달린 문제를 9명 위원 중 2명이 퇴장한 상태에서 새벽에 표결했다. 반대 여론이 거세지만 이변이 없는 한 이 결정은 유지될 것이다. 이것은 국가 역량의 문제이다. 정의와 실리와 사회모델의 전환을 모두 얻은 독일, 후쿠시마 사태 때 국가의 무능을 고스란히 드러내고도 또다시 그 길로 돌아가려는 일본, 당장의 필요 때문에 엄청난 원전을 짓고 있지만 동시에 미래에 투자하는 중국. 한국의 역량은 정말 이것이 전부인가.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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