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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었다. 매일 하나씩 낳던 황금알에 성이 차지 않은 주인이 거위의 배를 갈랐다. 거위는 죽었고, 더 이상 황금은 없었다. 오래된 우화이다. 오래된 이야기가 폐기되지 않고 변함없이 울림을 준다면, 여전히 그 세대가 그 이야기로부터 배울 것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배를 가른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이명박 정부 시절 강을 망가뜨린 결과를 우리 모두가 참담하게 경험하고 있다. 강이 병들고, 물고기가 죽고, 땅이 타들어가고, 농민이 울부짖는다.

강으로 향했던 포클레인을 박근혜 정부는 산으로 돌리고 있다. 규제완화와 관광활성화를 이유로 전국의 산지를 위기로 몰고 있다. 개발로부터 이곳만은 지키자고 국민과 약속한 마지막 보루인 국립공원마저도 개발 대상에 포함시켰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설악산은 우리나라 대표 국립공원인 것은 물론 천연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 등 5개 보호구역이다. 이렇게 겹겹으로 설악산이 보호받는 이유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은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산양을 비롯하여 담비, 삵, 하늘다람쥐 등 수많은 멸종위기종의 서식지이며, 생태와 경관 가치가 탁월하다. 설악산은 DMZ, 울진삼척지역과 함께 남한에 3곳만 남은 산양 집단 서식지이다. 남한 땅에 남은 산양은 겨우 800여마리로 추정된다. 위태로운 숫자이다. 이미 설악산에는 권금성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수십년째 운행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양양군과 정부는 대청봉 바로 코앞까지 케이블카를 놓으려 하고 있다.

사회 각계 인사들이 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설악산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_ 경향DB


이미 2012년과 2013년에 국립공원위원회가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는 불가능하다고 불허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강원도 양양군은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한 볼거리’ 지시에 힘입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위한 공원계획변경 승인신청을 환경부에 또다시 제출했다. 이번 양양군의 사업계획은 문제가 많다.

첫번째 문제. 양양군은 “이번 노선은 산양의 주요 서식지가 아닌 이동경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양양군 관계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집 안에서만 사나요? 직장까지 다니는 경로와, 장보기를 위해 다니는 경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다니는 경로는 다 제외하고 오로지 집 안 면적만 당신의 ‘서식지’인가요?” 산양이 이동한 곳이 주 서식지가 아니라는 양양군의 주장은 그 자체가 궤변이다. 멸종위기종이 많이 ‘이동’하는 곳이라면 그 자체가 서식지이다. 설악산 전체가 멸종위기1급 산양의 서식지인 것이다.

두번째 문제. 양양군은 케이블카 설치 근거 중 하나로 사회적 약자(장애인, 노인, 어린아이)를 위한 배려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이는 핑계일 뿐이다. ‘교통약자 이동 증진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됐지만,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는 정부가 약속한 100% 도입은커녕 16.4%에 불과하다(2013년 기준). 시외이동 저상버스는 단 한 대도 없다. 얼마 전 정부는 복지재정 3조원을 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작 필요한 일상적인 교통복지는 뒷전이면서 고작 한두 대의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450억원이나 되는 예산을 쏟아붓는 것이다. 세번째 문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검토하는 환경부 민간전문위원에 부적격 인사가 포함돼 있다. 민간전문위원에는 양양군 측 조사용역에 참여했던 사람뿐 아니라, 삭도(케이블카) 협회 관계자까지 포함돼 있다. 공정성 확보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다.

황금알을 탐해 거위 배를 가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기억하라. 케이블카 사업은 황금알도 아니다. 전국의 관광용 케이블카는 20곳. 이 가운데 3곳을 제외하곤 적자에 허덕인다. 황금알이 탐난다면, 오히려 설악산을 그대로 둘 일이다. 산양이 뛰노는 아름다운 설악산은 우리 후손들을 대대손손 먹여 살릴 위대한 자산이다.


황윤 |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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