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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탈원전’을 당론으로 정하자는 언급을 했다고 한다. 대단히 중요한 제안이지만, 당론으로 정하기 전에 기초 지식을
단단히 쌓아놓지 않으면 반대자들의 공격 앞에 맥없이 무너지고 공염불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탈원전’이 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원자력발전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정책
담당자들조차 원자력이 위험하고 문제가 많다는 것은 인정한다.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원자력을 고집하는
이유는 주판알을 튕겼을 때 원자력이 값쌀 뿐만 아니라 외환수지에 크게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는 건설비가
많이 든다. 반면에 연료비로 나가는 돈은 아주 적다. 이에 비해 가스나 석탄 발전소는 건설비는 적게 들지만 연료비로는 아주 많은
돈이 지출된다. 발전소 건설은 나라 안에서 이루어지고 설비의 상당 부분은 국내에서 조달된다. 그러나 연료는 거의 모두 해외에서
들어온다. 외화를 지불하고 사와야만 하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_경향DB
2013년에 원자력발전에서 사용한 우라늄 수입을 위해 해외에 지불한 돈은 10억달러 정도였다. 천연가스 수입을 위해 사용한 돈은
306억달러에 달했다. 30배 이상의 돈이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원자력에서는 우리가 1년 동안 사용한 전체 에너지의 10.4%를
얻었지만, 가스에서는 그 2배도 안되는 18.7%밖에 얻지 못했다. 30배 이상의 돈을 주고 2배의 효과밖에 끌어내지 못했다면
아주 비효율적으로 돈을 쓴 것이다. 천연가스가 반드시 필요한 곳이 있다. 발전 부문에서는 전기소비의 변동이 심할 때 가스발전소가
반드시 돌아가야만 전기공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원자력발전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거의 없다. 물론 가스는 원자력을
대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자력이 공급하던 전기를 모두 가스로 공급하면 전기요금은 올라가고 외환수지도 크게 나빠질 것이다.
문재인 대표는 태양광이 원자력을 대신해줄 것으로 믿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태양광발전 방식으로는 원자력을
몰아내기 어렵다. 태양광발전은 변동이 심하다. 해가 좋으면 전기가 많이 나오지만, 흐리면 얼마 안 나온다. 밤에는 전기를 조금도
내놓지 못한다. 아무리 많이 태양광발전소를 만들어 놓아도 밤에 사용할 전기를 위해서는 원자력이나 화력 발전이 필요하다.
태양광발전소의 발전용량이 현재 원자력발전소의 발전용량보다 훨씬 더 커지더라도 밤에 필요한 전기공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탈원전’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태양광발전이 늘어도 가스발전소를 유지해야 한다면, 전기 생산비용이 높아지고 요금이 크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손정의는 아시아 슈퍼그리드를 제안했다. 일본, 한반도, 중국, 몽골의 태양광발전소와 풍력발전소를 연결하면,
어느 한 지역의 날씨가 안 좋아도 서로 전기를 주고받을 수 있으니 백업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슈퍼그리드는 태양광발전의
근본 성격과 잘 맞는 것이 아니다. 태양광발전이 미래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는 그것이 민주주의적인 에너지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지역을 살린다는 것 때문이다. 작지만 수많은 태양광발전은 거대 에너지자본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슈퍼그리드는 대규모 태양광발전소와 거대 송전선로를 전제한다. 이를 위해 당연히 대자본과 중앙의 권력이 동원돼야 한다. 자칫하면
비리로 얼룩진 자주개발 사업 같은 것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한국에서는 대자본이 태양광산업의 주요 플레이어 역할을 하고
있다. 한화, 현대, 삼성, LG 같은 재벌들과 한국전력이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탈원전’을 당론으로 정하기에
앞서 이런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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