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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력공급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한국전력에서 담당한다. 전기사업법에는 주무부처 장관의 허가를 받으면 전기판매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한국전력 이외의 전기판매 사업자는 사실상 없다. 지난 수십년 동안 작은 도시 하나만 대상으로 전기판매를 해보겠다고 나선 업체도 전혀 없었다. 아마 전기판매는 한국전력에서 독점해야 한다는 선입견에 붙잡혀서 그런 생각조차 못했거나, 신청해도 주무 부처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포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전국의 송전망과 배전망을 소유한 한국전력에서 전력망 사용을 허락하지 않으면 사업이 무산된다는 판단을 했을지 모른다. 전력시장을 거의 완전하게 독점 지배하는 한국전력은 정부를 등에 업고 또는 정부의 간섭을 받으며 독점적 지위를 확장하거나 지키려는 사업들을 벌이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한 에너지 프로슈머 사업이나 햇빛새싹발전소 사업이 바로 그런 것에 속한다. 에너지 프로슈머 사업은 재생가능 전기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거래하도록 연결해준다는 명목으로 언젠가 도입될 재생가능전기판매 사업을 독점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고, 햇빛새싹발전소는 학교와 같은 공공건물 지붕의 태양광발전소 건설을 독점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햇빛새싹발전소는 한국전력과 자회사들이 4000억원을 출자해서 만든 특수목적법인이다. 이 회사의 특수목적이란 2020년까지 전국 2000개 학교에 총 200㎿ 규모의 옥상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다. 1㎾에 대략 200만원의 건설비가 들어가는 셈인데, 학교 지붕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 법인에서는 전국 시·도의 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이미 서울, 대전, 경남, 경북 교육청 등이 협약을 맺고 학교 지붕을 내어주기로 했다. 1㎾에 200만원씩 들여서 건설할 경우 현재의 전력판매단가로는 수지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햇빛새싹발전소에서는 대기업 수준의 연봉을 주는 직원들을 채용하면서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민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나 개인사업자는 적자 때문에 엄두도 못낼 이런 식의 사업이 가능한 이유는 한전이 철저하게 뒤를 봐주기 때문이다. 학교 지붕을 조사할 때는 한전사업소 직원이 동행하고, 회사의 간부직원들도 한전에서 파견해준다. 게다가 정부산하기관인 에너지공단도 학교장을 모아놓고 회사 홍보를 해주니 수지타산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일이 가능한 이유는 모두 한국전력이 거대 독점(공)기업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전과 햇빛새싹발전소의 이러한 공정경쟁 저해행위를 방치하고 있다. 아마 정부의 2030년 재생가능 전기 20% 목표달성과 에너지전환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매우 기능주의적인 접근인데, 박근혜 정권에나 어울리지 촛불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현 정부에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에너지전환은 단순히 원전을 줄이고 재생가능 전기를 크게 늘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 시민들이 자기 지역에서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해서 주고받는 에너지 민주주의의 정신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촛불혁명의 정신과 상통하는데, 정부에서는 이 점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려는 것 같다.

에너지전환은 국가와 대자본의 주도로도, 시민과 공동체의 주도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국가를 등에 업은 대자본이 주도하면 에너지전환은 민주주의와 촛불혁명의 정신이라는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가 된다. 촛불혁명의 정신에 부합하는 에너지전환은 시민과 공동체가 주도해야만 가능해진다. 정부는 이 점을 명심하여 독점(공)기업 한국전력이나 대자본에 의존해서 단순히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중만 높이려는 유혹을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시민과 공동체를 에너지전환으로 움직여가도록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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