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 11월, 겨울의 연례행사처럼 전북 고창과 전남 순천만에서 고병원성 AI(조류인플루엔자)가 검출됐다. 비상상태에 들어간 방역당국은 순천만 전면 폐쇄와 심각 수준의 방역 실시라는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가장 극단적인 선제적 조치는 물론 AI의 숙주 자체를 제거하는 ‘살처분’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강원도는 소규모 농가의 닭과 오리를 수매해 도태시키기로 했다. 소규모지만, 살처분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살처분의 끔찍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겨울 AI로 3000만마리의 닭과 오리가, 2010년엔 구제역으로 300만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당했다. 상당수는 생매장되었다. 그런데도 AI나 구제역의 창궐과 대규모 살처분의 근원으로 꼽히는 공장식 축산은 요지부동이다.

지난 11월, 제주시의 한 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고교생이 프레스에 눌리는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18번째 생일을 나흘 남긴 채. 지난 1월 전주의 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 나온 여고생이 목숨을 끊었다, ‘콜수’를 못 채웠다는 문자를 남긴 채. 지난해 서울 구의역에선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현장실습생이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뜯지 못한 컵라면과 숟가락을 가방에 남긴 채. 매년 6만여명의 고교생들이 ‘산업체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현장에 배치된다. “꿈을 키울 수 있는 현장실습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학생들의 호소와 요구의 정당성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학생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노동현장의 환경은 변할 줄 모른다.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해 가격을 매기고 매매가 이뤄지는 곳이 시장이라면,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이 시장으로 변한 지 이미 오래다. 생명도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앞에서”(프란치스코 교종 <복음의 기쁨>) 약자의 절규와 호소는 들리지 않는다. 공장식 축산이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하는 한, 엄청난 규모의 살처분을 하더라도 변화는 없다.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현장이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하는 한, 인명피해가 반복되어도 변화는 없다.

돈과 시장의 압도적 우위는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서 시민참여단은 원전 2기의 증가를 뜻하는 ‘공사 재개’와 ‘원전 축소’를 선택했다. 일부 언론은 절묘한 선택이라며 치켜세웠지만, 분명히 모순된 선택이다. 여기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매몰비용’이라는 시장 논리가 안전, 환경, 지역주민의 피해 같은 의제들을 압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24일,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가 두 번이나 부결시킨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사업을 조건부 승인했다. 연간 365만명, 하루 평균 1만명의 탐방객으로 몸살을 앓는 설악산이지만, 아직도 활용이 부족하다고 한다.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 금지를 위한 법률 개정이 진행 중인데 정부는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한다. 시장 논리 외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시장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돈이 ‘신’으로 등극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맘몬(물신)을 섬기는 시대다. 맘몬의 시대에는 언제나 수많은 약자들이 희생 제물로 내몰린다. 그러나 약자를 배제하고 강자만을 위하는 것은 실패한 사회다. “소수는 다수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웬델 베리 <생활의 조건>) 약자의 권리가 인정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어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일어났던 불행한 일들이 새 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지난 정권이 시작한 불의한 일을 새 정권이 이어받는 걸 보는 건 허탈한 일이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아직 세상은 바뀌지 않았음을 받아들이는 건 힘든 일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만큼 사람들이 변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건 아픈 일이다. 강자만이 아니라 약자들도 존중받는 사회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 여전히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서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아직, 추운 겨울이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