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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에너지 전환시대로 접어든 걸까? 에너지 전환은 이제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다. 에너지 전환이 무슨 의미고 왜 필요한지 알고 싶다면 정부가 만든 에너지전환정보센터(www.etrans.go.kr)를 방문해보라. 이런 자료를 정부가 제공하다니 참으로 큰 변화다.

그렇지만 벌써부터, 또 갈수록, 에너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하고 있다. 산업화 과정을 지원해왔고 이미 적지 않은 일자리나 지역의 이해와 연결되어 있는 기존 에너지 체계를 바꾸려 하기에 당연한 일이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 의지를 담은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둘러싸고도 지지와 반대, 보다 적극적인 대응 요구 등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것이다. 에너지 체계를 둘러싸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이해나 가치를 중심으로 목소리를 활발하게 내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다.

그런데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제시된 모든 의견이 다 옳은 건 아니다.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달리 보일 수는 있겠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전력공사가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권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를 두고 벌써 원전 수출에 성공했다는 식의 보도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면서 탈원전·원전 수출 구도의 모순으로 국내 탈원전정책이 해외 수출의 걸림돌이 되었다는 날 선 비판이 드세다.

하지만 정작 영국과 협상했던 조환익 전 한전 사장은 탈원전정책이 원전 수출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국내 원전정책은 경제성, 환경성, 안전성 등의 가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데 비해 해외 원전 수출은 “시장과 산업” 문제로 해당 수입국이 결정한 원전 건설 요구에 맞추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한국은 원전 밀집도와 소수 지역의 다수호기 집중도, 원전 밀집지 주변 지역 인구 규모에서 세계 최고인 데다 최근엔 지진 위험까지 더해져, 국내 원전의 단계적 축소는 정당성을 가지기에 산업으로서의 원전 수출이 별개로 진행될 수 있다. 물론 위험기술의 해외 수출을 윤리적으로 문제 삼을 수는 있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환경운동연합이 성명서에서 지적하듯 영국 무어사이드 신규 원전 건설 건은 ‘투자사업’이다. 일본 도시바가 포기한 원전 사업권을 인수, 한전이 비용을 조달해서 APR 1400 두 기를 건설한 후 향후 60여년간 전기 판매 이익을 남겨 투자금을 회수해 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도시바가 기술이 부족해서 포기했을까? 문제는 건설 금융 조달과 투자금 회수 가능성이다. 영국에서는 최근 승인된 해상풍력 발전사업의 전기 판매가격이 ㎿h(메가와트시)당 58파운드 아래로, 힝클리포인트 C 원전 2기의 향후 35년간 고정 판매가격인 92.50파운드보다 낮았다. 이런 상황에서 판매가격을 충분히 보장하는 계약을 맺지 못하면 한전이 수익은커녕 투자금을 온전히 회수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투자 실패 시 공기업인 한전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그야말로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의견과 사실이 이렇게 다르다.

게다가 최근 한수원 노조에서는 탈원전 목소리를 내온 교수와 시민단체 활동가, 변호사,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등에 대해 대대적인 고소·고발에 들어갈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의견이 다를 경우 법적 다툼이 아니라 각자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며 토론하고 소통하는 게 필요하다. 의견 차이와 갈등은 회피할 게 아니고 직시하고 대면해서 상생을 지향하며 풀어가야 한다. 엇갈리고 대립되는 목소리를 누르기보다 드러내고 다퉈야 한다. 그렇기에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원만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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