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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전환의 원년이 밝았다. 이제 우리는 안전과 생명이 중시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에너지전환의 출발점에 섰다. 포항 지진 이후 한 여론조사기관이 탈핵·에너지전환국회의원모임 의뢰로 지난해 11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확대정책에 대해 58.2%의 응답자가 계속 추진을 지지했고 27.0%만 추진 중단을 원했다. 국민 모두가 에너지전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세계적 추세인 에너지전환을 국민 다수도 이제 가야만 하는 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전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원자력과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이용에 생계를 걸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나 에너지전환 비용 때문만이 아니다.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문제는 바로 에너지갈등이다. 심각성의 정도는 다를지라도 원자력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송전탑 등을 둘러싼 에너지갈등이 태양광발전 시설 설치에서도 재연되는 느낌이다. 과거 몇몇 지역에 국한되었던 갈등이 전국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어떤 에너지 이용도 환경이나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없지만 재생가능에너지는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간주된다. 원전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방사능의 위험성을, 화석연료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하지만 재생가능에너지는 환경이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적고 그런 영향조차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그나마 풍력발전은 소음이나 전자파, 철새 이동경로 방해, 빛 반사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설치에 주의를 요하지만, 태양광발전은 숲을 대대적으로 훼손한다거나 미관이나 경관에 대한 고려 없이 설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별다른 환경이나 건강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풍력발전에는 일정한 이격거리 규정을 두지만 태양광발전에는 두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태양광발전에 이격거리를 두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여러 지역에서 태양광발전소 건설을 ‘결사반대’하며 민원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총 태양광 설비용량(약 4.6GW)의 63%가량이 입지한 농촌에서 반대 민원이 늘고 있다. 주민들은 미관이나 경관 침해 문제만이 아니라 패널의 빛 반사, 주변 온도 상승, 전자파 발생 등을 문제로 제기한다. 하지만 기술 검증 결과 이런 우려는 사실이 아닌 걸로 나타났다. 태양광발전 시설에 대한 이격거리 기준을 설정·운영하지 않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가이드라인과 다르게 지난해 말까지 85개 지자체가 도로나 주거지역으로부터 최소 100m에서 심지어 1000m까지 이격거리를 두도록 하는 개발행위허가 지침을 마련했고 그 결과 무산되는 사업들이 생겨났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현재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들을 살펴보면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사업자들이 농촌을 단지 대규모 설치 대상지로 대상화할 뿐 지역주민의 보금자리에 변화를 야기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동의를 구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지역주민에게 아무런 수익이나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은 채 소외시키거나 배제한 탓이 크다.

주민이 함께하지 않는 태양광발전 확대는 또 다른 토목공사이자 외지인에 의한 지역수탈로 느껴진다. 지역주민이 태양광발전소 건설 과정에 참여해서 의견을 나누고 에너지 생산 주체로 탈바꿈하여 이익과 일자리를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고령화가 꾸준히 진행되고 농가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농촌 태양광발전은 협동조합 방식의 출자나 임대를 통해 농가소득원이자 농촌재생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주민참여와 이익공유 없는 에너지전환, 그것은 네모난 동그라미와 같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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