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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은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어렵고, 원자력을 평화를 위해서만 이용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먼 나라에 ‘몰래’ 특사로 다녀오고 그 이유를 비밀에 부치는 것은 민주주의가 단단히 뿌리내린 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나라와 큰 돈벌이가 되는 계약을 맺었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헌법에 명시된 절차도 무시하면서 군대를 파견하고 각종 군사지원을 해주는 일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원자력발전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현실로 만들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특사파견으로 불거진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각종 비밀협약(설)들은 어느 누가 잘못한 결과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하찮게 여겼던 반민주 정부가 민주주의를 모르는 왕정국가에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어려운 원자력발전을 넘겨주었기 때문에 거의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지금 특사파견을 둘러싸고 극심한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는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가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촛불혁명 없이 반민주 정부가 지속되었다면 이런 논란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민주주의 정부도 원자력발전 앞에서는 주눅들어 있는 것 같다. 특사파견 이유도 제시 못하고, 밝히면 야권이 감당할 수 있겠냐고 우회적으로 반격하고, 원전수출이라는 국익을 위해 숨길 수밖에 없다는 변명이 모두 그런 까닭일 것이다. 그중에서 정부를 가장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이 ‘원전수출은 국익’이라는 구호인 것 같다. 특사파견 이유를 밝히면 사우디, 터키, 요르단, 영국 등지의 원전 수출길이 막힌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원전수출은 국익을 위하는 것일까? 오히려 국익을 해치는 일은 아닐까? 더 나아가서 민주주의를 억누르고 인권 침해를 돕고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일은 아닐까? 대다수 아랍에미리트연합 국민들은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관심이 없다. 전기요금 거의 제로라는 국왕의 시혜를 누리며 사는 데 익숙해져 있을 뿐이다. 핵폐기물과 사고위험에 대한 우려는 극히 일부에서만 나오고, 이들도 공개적으로 목소리 내기를 꺼린다. 우리나라의 박정희 정권에서 고리 1호기가 세워질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원전의 위험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고, 촛불시민들은 원전을 포기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그 나라에 원전을 수출한 한국은 자기가 포기한 원전을 돈벌이가 된다는 이유로 떠넘겼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중동의 다른 나라에서 비난은 이미 시작됐다. 2012년 요르단 시민들은 한국의 연구용 원자로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한국대사관에 건설을 멈추라는 항의서한을 보냈다.

일년 전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는 2050에너지계획을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전체 에너지의 절반가량을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하고, 이를 위해 170조원에 달하는 돈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6%밖에 안된다. 원자력발전은 현재 건설 중인 4기로 묶어 두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도 미래는 태양광과 풍력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원자력발전소를 가지려 했을까? 답은 아마 군사적 활용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원자력발전소 보유가 아니라 이를 당근 삼아 한국의 군사력을 가져오는 것이 이면의 목표였으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랍에미리트연합은 원자력이 핵무기가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도 군사용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한국은 영리한 그들에게 이용당한 셈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원전수출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170조원과 22조원을 비교하면 우리가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그래야 떳떳하게 돈도 벌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민주주의 국가로 우뚝 설 수 있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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