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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제국’은 독일의 평화운동가이자 미래학자 로버트 융크가 제안한 개념이다. 융크는 1977년 펴낸 같은 제목의 책에서 원자력발전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고 비밀주의와 담합이 일상화된 국가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원자력 제국을 떠받치고 있는 주역들은 누구인가. 관료와 학자들이다. 관료들은 원자력업계의 이익이 곧 국가 이익이라는 착각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학자들은 세계 에너지시장의 지각변동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관심이 없고 예측 능력도 갖추고 있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일 년여 전쯤으로 돌아가 보자. 2015년 12월1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는 원자력산업회의가 주최하는 조찬강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말이 좋아 강연회지 실은 원자력산업계가 관료, 교수, 기자들을 불러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의견을 나누는 이너 서클 모임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 초대된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료는 “원자력업계가 올해 달성한 성과가 많다”고 치켜세웠다. 영덕과 삼척이 신규 원전 부지로 7차 전력수급계획에 포함됐고, 월성 1호기의 수명연장이 확정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연자로 나선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한술 더 떴다. 그는 “석탄 축소나 가스 확대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이 유력한 온실가스 감축 수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국내 에너지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국책연구기관이다.

이처럼 관료들과 교수들이 보이지 않게 원자력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곳은 수두룩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원안위에 주어진 임무는, 관련 업계가 원전과 관련 시설들을 안전하게 운영하는지 감독하고 규제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눈에는 이 위원회가 ‘안전’위원회가 아니라 ‘진흥’위원회로 비친다. 안전성과 관련한 일체의 자료를 비공개로 한 상태에서 검증과 심의를 주먹구구식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월성 1호기 수명연장 결정을 취소하라는 며칠 전 법원의 판결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원안위를 상대로 ‘법의 지배’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법의 지배는 법에 의해 국가권력을 통제함으로써 자의적인 지배를 배격하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모든 사실이 법의 테두리에서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규범, 윤리, 도덕은 법은 아니지만 사회질서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법의 지배가 중요한 이유는 법이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도 구속한다는 점이다. 법원 판결문은 “서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안전성 평가도 허술했다”로 요약된다. 법에 따르면 한수원은 원전 운영 변경을 신청할 때 7종의 안전성 관련 서류를 원안위에 제출해야 한다. 또 운영 변경 전후를 비교할 수 있는 표도 내야 한다. 하지만 한수원은 필수 서류 7개 중 6개를 제출하지 않았고, 제출된 비교표로는 본래 취지인 운영 변경 전후 상황을 비교하기 어려웠다.

심의 절차도 엉망이었다고 한다. 9인의 원안위원은 계속 운전 허가만 심의하고 후속 조치인 운영 변경 허가는 위원회 실무자인 원자력안전과장이 전결 처리했다. 법원은 심의에 참여한 원안위원 중 2명은 결격 사유가 있었으며, 원전의 안전성을 판단할 때 적용한 기준도 느슨했다고 판단했다. 이쯤 되면 원안위는 법의 지배는커녕, 법을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법에 의한 지배’를 해왔던 셈이다.

법원이 가동 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 월성 1호기는 가동이 중단되고 해체 과정을 밟게 된다. 그렇게 되면 법적 다툼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최초의 원전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마냥 흔쾌한 것만은 아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재판부가 결정하는 사회 또한 진정한 의미의 법의 지배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시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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