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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공포가 전국 축산 농가를 덮칠 기세다. 지난 5~6일 충북 보은과 전북 정읍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이 8일에는 경기 연천으로 북상했다. 9일에는 충북 보은의 구제역 최초 발생 농가에서 1.3㎞ 떨어진 한우농장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왔다. 구제역 바이러스가 공기를 타고 전염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미 전국으로 확산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연천의 젖소 농가에서 검출된 구제역 바이러스는 보은과 정읍에서 검출된 ‘O형’과 다른 ‘A형’으로 확인됐다. 같은 시기에 O형과 A형 바이러스가 동시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국내에 보유 중인 백신이 A형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지 확인되지 않은 데다 전국 소 283만마리에 접종할 물량도 확보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구제역 위기경보를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올렸다.

구제역 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한 9일 한 수의사가 경북 안동 정하동의 축산농가에서 소들에게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지 닷새 만에 확산 추세를 보이는 것은 당국의 허술한 방역체계 탓이 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구제역이 발생하자 “소의 구제역 항체형성률이 97.5%에 달한다”며 전국 축산 농가로 확산될 가능성은 낮다고 자신했다. 구제역이 발생한 보은과 정읍 축산 농가의 구제역 항체형성률이 각각 19%와 5%에 그친 것은 백신 접종을 게을리했거나 기피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제역 방역시스템에 구멍이 났는데도 축산 농가의 도덕적 해이를 탓하며 책임을 떠넘기려 한 것이다. 농식품부가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항체형성률을 엉터리로 작성한 사실도 드러났다. ‘소 구제역 항체형성률 97.5%’는 전국 소 10마리 중 9마리에 항체가 생겼다는 뜻이 아니라 전국 축산 농가 10곳 중 9곳이 정부 백신 정책에 단순 참여한 수치로 틀통난 것이다. 이런 엉터리 통계를 근거로 구제역 방역대책을 세워놓고 “전국 확산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국제수역사무소(OIE)에 조작된 백신 접종 통계자료를 제출한 것도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아닐 수 없다.

농식품부는 백신 접종만으로는 구제역 확산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범정부 차원의 방역대책을 수립·집행해야 한다. 국정을 책임지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선주자로 나설지를 놓고 정신을 팔 때가 아니다.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때처럼 늑장대처로 일관하면 구제역마저 재앙 수준으로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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