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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 발전에 힘입어 에너지 수급체계를 지속적으로 선진화시켜 왔다. 그렇지만 북한은 일제강점기의 전력공급체계를 아직까지 상당 부분 답습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전력난도 심각한 상황이다. 북한은 에너지 공급의 90% 이상을 수력과 석탄 발전에 의존하고 있으며, 송배전 전압이 일제강점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전력설비 역시 구 소련의 원조를 받았던 시기와 거의 비슷해 매우 후진적인 구조이다.

발전량이 국가경제의 동력이며 경제성장의 밀접한 요소임을 고려할 때, 중공업 의존도가 높은 북한의 경우 발전량 부족이 경제 악순환을 겪고 주민 삶의 질이 개선되지 못하는 핵심 원인으로 생각된다.

1994년 1차 핵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북·미 제네바 회담’에서 200만㎾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원전사업이 합의되어 착수된 적이 있으며, 2000년 초에는 북한이 ‘단기 50만㎾, 장기 200만㎾’ 규모의 대북 송전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이렇듯 북한은 심각한 전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남북 및 북·미 협상 테이블을 활용해 왔으나, 남북 전력 협력사업은 소규모인 10만㎾ 정도의 개성공단 전력공급에 머물러 있었고 이마저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남북관계가 경색과 해빙을 반복해 온 지난 70년을 돌이켜볼 때,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처럼 경색된 지금이 오히려 새로운 남북한 협력을 모색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한다. 핵동결을 전제로 한 현 정부의 남북한 대화 재개 노력에 따라 남북한 전력 협력이 다시 논의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관련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북한은 협상의 대가로 최우선적으로 전력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면밀한 대비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남북한 에너지부문 통합에 대비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남북한 전력 협력은 사업 측면에서 볼 때 대북 직접 송전, 북한지역 발전소 건설 및 공동 활용, 발전연료 지원, 전력설비 공급과 인력·기술 지원 및 신재생에너지 등 다양하게 구현될 수 있다.        

협력 규모와 투자비 관점에서는 시범사업과 남북 경협사업, 북한 주민 지원사업 및 본격 인프라 투자사업 등이 있으며 장·단기 계획을 세워 단계별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민간 차원의 소규모 시범사업으로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단지를 조성하여 북한 주민 생활의 안정에 기여하고, 북한의 기존 수력·화력 발전소 리모델링을 통한 남북한 경제협력 활성화와 북한 에너지 자원 개발 촉진 등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 협력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으며 제각기 중요성을 가지겠지만, 산업의 동력원이자 민생을 안정시키는 존재로서 전기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남북한 전력 협력을 어떻게 준비하고 실행하느냐는 미래 북한의 에너지 공급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의 회생 여부를 좌우하여 향후 통일비용을 절감시키는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전력 및 에너지 분야의 입지, 환경, 기술 개발, 인력 활용 등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다.

나아가 남한의 기술과 자본력,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하여 동북아 에너지 허브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최근 한국·중국, 한국·일본, 한국·러시아 등 남북한을 둘러싼 동북아 에너지 연계망이 활발히 거론되고 있다. 이는 국가 간 전력망뿐만 아니라 가스, 송유 및 철도, 도로 등 모든 네트워크 연계망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이므로 남북한 전력 협력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에너지 네트워크의 허브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국제정세가 어지럽게 얽혀 있지만, 정부 당국과 관련 공기업, 민간단체가 한반도가 동북아시아 허브국가로 나갈 수 있다는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실천에 옮긴다면, 남북 긴장을 푸는 동시에 통일을 준비하며 민족의 원대한 미래를 꿈꾸는 일이 될 것이다.

<구자윤 |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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