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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째 아내는 발뒤꿈치가 아파 제대로 걷지 못했다. 족저근막염이라고 진단이 나왔는데 집에서도 발바닥이 편한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촛불집회에 나가지 못해 좀이 쑤시던 아내가 내게 따져 물었다. “100만 촛불이니 230만 촛불이니 하지만 거리에 나간 촛불만 세는 건 아니라고 봐. 광화문에 나가진 못해도 마음속에 촛불을 켜는 나 같은 사람들은 왜 빼놓는 건데.” 듣고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집, 가게, 공장에서 타오른 ‘국민 촛불’까지 염두에 두면 숫자는 무의미해진다.

탄핵소추안 통과 이후 촛불의 방향에 대한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지역 민회를 구성하자는 움직임도 있고,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안제 도입을 내세우는 쪽도 있다. 촛불 시민혁명의 역사적인 의의를 짚는 토론도 시작됐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물줄기로 모일 것으로 보인다. 촛불로 응집된 민심을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모순과 부조리까지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촛불은 비정형이며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이번 촛불을 ‘녹색 촛불’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시종일관 유지된 비폭력과 집회 후 쓰레기를 청소하는 시민들의 배려심 때문만은 아니다. 녹색은 독점과 배제, 뻔뻔함과 거짓, 오만과 독단과 상극을 이룬다. 국가권력의 사유화와 정경유착에 분노하는 촛불, 국민이 공화국의 주인임을 밝히는 촛불은 그 자체로 생태적이다. 촛불은 스스로 제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힌다. 100만분의 1이라도 되겠다고 추위에도 아이들 손을 잡고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바로 그 모습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과 휴대전화로 빛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촛불이 녹색인 이유는 더 있다. 그건 광장 바깥에서 켜졌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촛불을 보면 안다. 대표적인 사례는 전국 최악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지역인 충남 당진에서 켜진 촛불이다. 지난 5일 시민들은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추진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민투표를 ‘기업 이익을 위해 주민의 생명과 건강을 등한시한 채 몇 푼의 가산금으로 지역을 분열시키고 주민을 현혹하는 정부의 불통행정에 맞선 주민자치운동’으로 규정한 점이 눈에 띈다. 이 촛불은 재작년과 작년에 연이어 진행된 삼척과 영덕의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에서 켜졌던 촛불이 옮겨붙은 것이다.

또 다른 녹색 촛불은 지난 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켜졌다. 장병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기사업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가결한 것이다. 법률안은 “전기판매사업자는 발전원별로 전력을 구매하는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경제성, 환경 및 국민안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전력시장은 그동안 연료비가 가장 싼 발전소부터 가동하는 경제급전 방식에 따라 원전, 석탄, LNG 순으로 발전소를 가동해 왔다.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안전성이나 미세먼지 등 환경영향에 눈감아 온 부조리한 관행을 뿌리 뽑을 수 있게 된다.

국회에 켜진 녹색 촛불은 또 있다. 지난달 14일 홍영표 의원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획기적인 감축을 위한 ‘미세먼지 대책 4대 패키지 법안’을 발의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석탄발전설비의 발전량을 국내 총발전량의 30% 이내로 제한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단연 눈에 띈다. 현재 40%가 넘는 석탄발전 비중을 낮춰 미세먼지와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것이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촛불이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럴 가능성이 커 보여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는 광장에서 촛불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광장이 빈다 해도 쓸쓸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이미 국민들의 마음속에 켜진 수천만개의 녹색 촛불이 있으니 말이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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