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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양승태 대법원장 등 법관들을 광범위하게 사찰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공개됐다.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을 명시한 헌법을 정면 부정하는, 헌법 질서 문란행위이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감이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 당시 이 신문사 사장을 지낸 조한규씨는 어제 열린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특위 4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양승태 대법원장의 일상을 사찰한 내용”이라며 문건을 특위에 제출했다.


2014년 1월6일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문건은 ‘대외비’라고 표시가 돼 있다. 문건에는 ‘대법원, 대법원장의 일과 중 등산사실 외부 유출에 곤혹’이라는 제목으로 양 대법원장의 동향과, ‘법조계, 춘천지법원장의 대법관 진출 과잉 의욕 비난 여론’이라는 제목으로 최성준 당시 춘천지법원장(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부정적 평판 등이 적혀 있다. 조씨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아 민정비서관실에서 작성했지만 (별도로) 수집한 문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문건은 ‘정윤회 비선농단 의혹’을 취재하던 세계일보 기자가 2014년 당시 확보한 것이다. 조씨는 이 문건이 보도되지 않은 이유에 관해 “정윤회 문건 보도로 청와대의 고소가 들어왔고, 기자들이 30시간 이상 검찰 조사를 받는 바람에 후속 보도를 못했다”고 설명했다.


국회 청문회 도중 불거진 대법원장에 대한 사찰 의혹이 알려진 15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퇴근하며 기자의 질문을 받자 손사래를 치고 있다. 정지윤 기자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적힌 청와대의 사법부 통제 발상을 고려하면 문건은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김 전 수석 비망록엔 2014년 9월6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법원 지나치게 강대·공룡화 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길을 들이도록’이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2014년 6월24일경부터 9월7일 임기만료인 양창수 대법관의 후임으로 호남 출신을 배제하고, 검찰 몫 획득을 위해 양승태 대법원장 등과 교류하라’는 내용의 메모도 있다. 선박사고를 낸 선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세월호 사건의 정부 책임을 언급한 판사를 인사 조치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법관 사찰은 개인의 약점을 잡아 정당한 사법권 행사를 방해하려는 불순한 의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문건이 도·감청이나 불법 미행을 통해 작성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청와대는 지난 4년간 챙겨야 할 국정은 최순실씨 등 비선에 내주고, 해서는 안되는 일만 골라서 했다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대법원은 청와대에 해명을 촉구했지만 지금의 청와대와 박 대통령은 그럴 자격도 능력도 안된다. 결국 청와대의 법관 사찰 의혹도 박영수 특검의 수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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