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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일명 한한령(限韓令)이라 불리는 중국의 대응이 시작되고 있다. 이는 중국 측이 한국과의 인적교류와 한류를 제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 심리적 여파는 벌써 대단하다. 본격적인 경제 제재로 이어지지 않나 하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우리 무역량의 거의 30%(홍콩 포함)에 달하는 중국과의 갈등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는 공포이다.

당초 사드 배치 결정을 내릴 때, 우리 정부는 중국의 경제보복은 어려울 것이라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역시 공개적으로 이를 확인하였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마늘분쟁에서와 같은 경제보복은 발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음 논거로는 한·중 간의 경제 구조가 상호 보완적이어서 경제 제재는 중국 경제에도 타격을 안기며, 현재와 같이 중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 제재는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상황은 그렇지 않다. WTO 규약을 준수하더라도 대응수단은 너무나 많다. 한·중 경제는 점차 보완성이 약화되고 경쟁 관계로 전환 중이다. 중국이 경제협력을 필요로 하는 국가는 이제 일본이나 독일이지 한국이 아니다. 그리고 중국의 성공적인 내수시장 강화로 대외의존성은 대폭 약화되고, 자체가 완결적인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중국은 대체가 가능한 시장이 존재하는 반면 한국은 중국 시장을 대체하는 상대를 찾기 어렵다.

중국은 지난 7월8일 한·미가 사드 도입에 대한 결정을 내린 직후, 다각도로 대응책을 강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결과,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첫 번째, 사드 문제와 북핵 문제는 분리하여 대응한다. 두 번째, 사드 문제보다는 북핵 문제가 더 중요하고 사드 문제로 한·중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킬 수는 없다. 세 번째, 사드 문제에 대한 중국의 반대 입장을 한국 측이 분명히 인식하게 한다. 네 번째, 추후 중국의 입지를 고려하여 비관세 장벽이나 정당한 절차와 방식에 입각해 한국을 압박하되 문서형식으로는 그 보복의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다섯 번째, 한국이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조치를 취하면 이에 상응하여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도 사드 문제 자체가 중국의 안보이익에 심각한 위협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중국의 현 군사역량이면 사드의 용도변화를 탐지하는 것은 물론 일단 유사시 이를 쉽사리 무력화할 수 있다. 그러나 사드는 미국이 대중 전략경쟁을 가속화하는 중요한 조치의 일환이며, 한·미동맹이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바탕으로 대중 견제로 전환하는 시발점이 되고 있다는 우려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 더구나 시진핑 외교에서 대담하게 추진한 친한 정책이 가장 실패한 외교사안으로 전락하면서 시진핑의 권위에 큰 손상을 가져왔다.

최근까지 중국의 조치를 보자면 양면적이다. 우선, 불편함과 위협의식을 강화해 문제제기를 하는 수준에 아직 머물러 있다. 본격적인 대응조치를 아직 취하지도 않았다는 의미이다. 중국은 한·중관계를 파괴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타협하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취할 대응 리스트를 점검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 마찰의 단계적 확대, 영해와 영공분쟁, 군사적 조치까지 올라갈 수 있다.

한국 일각에서는 중국의 이러한 압력을 국가자존심의 문제로 치환하거나 한·미동맹을 강화해 대응하자는 논리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대응들이 북핵 위협과 경제 위기 등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턱없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더 수렁에 빠져드는 결과로 귀결될 것 같다는 불안감마저 증폭되고 있다.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 의지도 역량도 없다. 중국은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 구조를 형성해가고 있다. 이제 중국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주도하려 할 것이다. 향후 중국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점차 약화될 것이다.

국제정치에 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중이 모두 자국의 특수이익을 한국에 강요할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 위기에 대응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은 극도의 명민한 전략적 판단과 신중한 안보외교 정책, 국력의 결집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해 있다. 다행히도 이번 탄핵정국이 한국의 추락하는 안보위기를 돌이킬 가능성을 던져준다. 더 이상 무능한 정권과 정책결정은 안 된다. ‘민주’와 ‘숙의’를 바탕으로 최대한의 지혜를 모으고, 국론을 결집하면서, 배타적인 방식이 아닌 포용적인 방식으로 국제관계를 풀어나가야 한다. 어렵더라도 그 길만이 살길이다.

김흥규 | 아주대 교수·중국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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