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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늦어진다는 것은 
나무의 휴면 시작 시기가 
늦어진다는 것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무도 수면이 부족하면 
다음해 가뭄·폭염·한파에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가을이 늦어지고 
봄이 빨리 찾아온다는 건 
나무가 잠에 늦게 들고 
빨리 일어나는 것이다

나무 수면시간이 준 것은
가을의 기후위기 신호다
그 수면시간 안 돌려주면
찬란한 오색단풍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올해 초 동해안에서 발생한 산불은 한반도를 삼킬 것처럼 기세를 떨쳤다. 그리고 여름이 오자 서울 시내 한복판에 사람의 목숨을 위협할 만큼의 폭우가 내렸다. 봄을 지나 여름까지 기후위기를 몸소 체험한 한 해가 어느덧 중반을 지나 가을이 찾아왔다. 며칠간 이어졌던 반짝 추위도 지나가고 따뜻한 햇살과 적당히 시원한 바람에 오랜만에 날씨가 주는 행복감을 맛보는 것 같다. 이런 좋은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울긋불긋 오색단풍을 감상하기 위해 등산을 간다는 뉴스가 TV를 장식하고, 붉고 노랗게 변한 나뭇잎 아래에서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으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3년간 코로나로 보낸 힘든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 모두가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사진의 배경이 되어주는 나무는 행복한 것일까. 말하지 못하는 나무도 따사로운 날씨를 즐기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나무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 

조금 관심이 있는 분들은 눈치를 챘을 것이다. 단풍이 드는 시기가 많이 늦어졌다는 것을. 산림청 국립수목원에서 10년 동안 전국 10개 수목원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10년 동안 3.4일, 연평균 0.34일 정도 단풍 시작 시기가 늦어졌다. 물론 수종별로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종에서 단풍 시기가 늦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 동부지역 산림, 중국 북동부지역 산림, 유럽의 온대산림, 그리고 중앙아시아 등 대부분의 북반구 온대지역 산림에서 단풍이 늦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온대지역에서 가을이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여름이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단풍이 들고 밤이 되면 갑자기 추워져 일교차가 매우 커지는 날들을 경험한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지금 현재 10월 말이 되었지만 내 사무실이 있는 관악산도 완벽한 가을의 신호는 보내지 않고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가을은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것인가. 

기본적으로 가을에 단풍이 드는 것은 봄과 여름철 나뭇잎을 푸르게 보이게 하던 엽록소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나무는 스스로 기온을 인지하고 날이 너무 추워지기 시작하면 수분의 흐름을 중단시킨다. 추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때 나무의 뿌리부터 줄기, 가지 그리고 잎으로 이어지는 수분의 순환이 중단되면 잎에서는 더 이상 영양분을 만들 수 없게 된다. 결국 영양분을 더 만들 수 없게 된 잎에서는 엽록소가 점점 없어지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빨강이나 노랑 같은 색소들이 드러나 단풍이 드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중요한 점은 “나무가 온도를 인지한다”는 사실이다. 즉 나무가 충분히 추위를 인지해야 단풍이 나타나는 과정이 시작되기 때문에 날씨가 추워지지 않으면 단풍이 시작될 수 없는 것이다. 태양의 움직임과 관련한 계절의 변화인 절기상 가을, 즉 백로가 지나도 날이 따뜻하다면 아직 나무에게 가을은 오지 않은 것이다. 최근 들어 누구나 느끼고 있듯이 10월이 되어도 가끔 반팔을 꺼내 입을 정도로 가을이 따뜻해졌다. 오히려 여름이 길어졌다고 느낄 정도의 따뜻함이다. 그래서 결국 단풍이 드는 프로세스의 시작이 늦어져 붉은 단풍이 만개하는 시기가 늦어진 것이다. 물론 일조량(해가 들어오는 양)도 중요하지만 한국이 위치하고 있는 중위도는 한겨울에도 빛이 적지 않은 편이라, 일조량의 변화 때문에 단풍의 시기가 급격히 변하기는 어렵다. 

늦어지는 단풍에 담긴 기후위기

온난화에 따른 단풍 시작 시기의 변화에 대한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수집한 자료를 이용해서 단풍 시작 시기와 낮 기온 그리고 밤 기온의 관련성을 조사한 것이다. 즉 전 지구적으로 단풍 시작 시기가 늦어지는 것이 온도와 관련이 높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낮에 온도가 올라가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밤의 기온이 올라가는 것이 중요한지를 파악해 본 것이다. 결과는 흥미롭게도 밤 기온의 역할이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 중위도 많은 지역에서 나타난 가을철 야간 최저기온 상승에 대해 나무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바로 밤이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가 온난화를 유도하는 첫 시작은 밤에 일어난다. 낮에 태양에서 지구로 들어온 에너지를 밤에 지구는 다시 우주를 향해 내보내는데, 바로 그때 이산화탄소가 지구에서 나가는 에너지를 붙잡아 다시 지구로 돌려보내는 것이 온난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단풍 시작 시기의 변화에는 인간의 온실가스 배출 영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난화로 단풍의 시작 시기가 늦어지는 것은 나무, 산림, 육상생태계, 지구시스템, 나아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단풍이 늦어지면 나쁜 것인가, 아니면 좋은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단풍의 시작이 늦어진다는 것은 결국 나무의 생장기간이 길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푸른 숲을 볼 수 있는 날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장기간이 길어졌다는 것은 식생의 탄소 흡수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활동으로 인해 대기로 방출된 이산화탄소는 전 지구적인 온난화를 유발하고, 온난화로 인해 식생의 생장기간이 길어지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앞에서 잠깐 언급한 일조량이다. 일조량은 매해 변동이 크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10년 이상의 변화 관점)에서 단풍 시작 시기가 늦어지는 것에 크게 기여를 하기는 힘들지만, 가을철 식생의 탄소 흡수 능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가을 푸른 산은 푸른 게 아니다

이러한 특징은 필자가 몇 년 전 인공위성 자료를 이용하여 전 지구 온대지역 산림의 생장기간 및 탄소 흡수 기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을 때 확인한 사실이다. 지금 우리 머리 위 약 350㎞ 이상에서는 다양한 인공위성들이 지구의 환경 변화를 감시하고 있다. 특히 지구 식생의 초록도(greenness)를 파악할 수 있는 위성은 우리 눈으로 잎을 보는 것처럼 얼마나 식생이 ‘외관상’ 초록색을 띠고 있는지를 위성 측정값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식생의 ‘내부’ 활동인 광합성 및 생리활동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위성도 존재한다. 그래서 식생의 겉과 속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위성을 같이 살펴보면 일조량이 충분한 봄철은 잎의 출현 시기가 빨라짐에 따라 식생의 광합성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지만, 일조량이 충분하지 못한 가을철에는 봄과 달리 초록색 식생의 생장이 활발하더라도 실제 광합성을 통한 생산성의 증대, 즉 탄소 흡수 능력의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가을철 우리 눈에 보이는 푸른 산이 기능적으로는 푸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나무의 단풍이 늦어진다는 것은 결국 나무의 휴면 시작 시기가 늦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대지역 낙엽활엽수는 가을에 잎을 떨어트리고 휴면에 들어간다. 추운 겨울을 무탈하게 지내기 위해 긴 잠을 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추운 겨울 동안 내한성을 기르며 더욱 건강한 나무가 되기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다. 사람이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건강한 하루를 보낼 수 있듯이 나무도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나무도 수면이 부족하면 다음해 가뭄, 폭염, 한파에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게다가 지금 더 심각한 것은 내년에도 어김없이 봄이 빨리 찾아 올 것이라는 점이다. 가을이 늦어지고 봄이 빨리 찾아온다는 건 나무가 잠에 늦게 들고 빨리 일어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수면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인지해야 할 가을의 기후위기 시그널이다. 우리가 나무의 수면시간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찬란한 오색단풍은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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