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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아홉 번째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6년 전 작고하신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선생님도 백수를 넘기셨는데, 선생님도 그러시기를 빕니다. 지적 거장들의 장수는 동시대인들에게 복입니다. 특히 선생님처럼 나이와 더불어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는 분의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14일 서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 때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고 계신 백남기 선생님께 보내주신 위로와 서울 시민들에게 보내주신 연대의 메시지에 한국인으로서 감사드립니다.

한 세대 전에 돌아가신 장 폴 사르트르 선생님은 ‘지식인’을 “자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 “자신의 지적 영역에서 쌓은 명성을 ‘남용’하여 기존 사회와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사람”이라 정의했습니다. 물론 이 맥락에서 ‘남용’이라는 말은 긍정적 의미입니다. 그런 뜻의 지식인을 꼽으라면, 이 시대에 선생님을 앞설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선생님은 언어학과 언어철학, 인지과학 등에서 쌓으신 명성을 ‘남용’하여 기존 사회와 정치권력을 가차 없이 비판해 오셨습니다. 아니, 지식인의 책임을 거론하며 베트남전쟁을 매섭게 비판한 선생님의 첫 정치평론서 <미국의 힘과 새 지배계급>이 나온 것이 1960년대 말이니, 학자 촘스키와 지식인 촘스키는 선후를 가릴 것 없이 나란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독자들이 선생님을 소비하는 양상은 시간축을 따라가며 크게 달랐습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선생님의 한국인 독자들은 주로 영어학이나 일반언어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의 언어학 책들만 게걸스럽게 읽었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1970년대 한복판에 선생님의 이름을 처음 들은 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하던 시절 제가 처음 접한 선생님의 책은 프랑스어판 <통사구조론>이었습니다. 뒷날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그 책이 소위 ‘표준이론’의 고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어학도로서 제가 읽은 선생님의 책도 언어학자 촘스키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통사이론의 양상들> <영어의 소리패턴> <데카르트 언어학> <언어에 관한 성찰> <지배와 결속에 대한 강의> 따위가 그즈음 제가 읽은 선생님 책들입니다. 1990년대 들어 늦은 나이에 프랑스에서 언어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읽은 <최소주의 프로그램>이 제가 읽은 선생님의 마지막 언어학 책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표준이론에서 확대표준이론으로, 지배결속이론으로, 그리고 최소주의 프로그램 등으로 진화한 선생님의 변형생성문법을 고스란히 따라가며 촘스키를 읽은 것입니다. 선생님이 언어학자 이상의 지식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생님의 정치 에세이에는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언어학을 전공하지 않는 여느 한국인들은 1980년대 후반까지 선생님의 이름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지식인 촘스키의 책은 소개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미주의는 곧 공산주의로 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선생님만큼 공산주의와 거리가 먼 좌파 지식인도 드물 텐데 말입니다.

한국 민주주의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던 1980년대 말 이후 한국인들의 촘스키 소비양상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한국의 촘스키 독자들은 일반언어학이나 영어학 세미나에 참가하는 대학원생들이 아니라 이제 일반인이 되었습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한국에 소개되지 못한 선생님의 정치학 저서들이 무더기로 번역되었습니다. 독서인이라면 누구나 촘스키를 거론할 만큼 선생님은 한국에서 대중적 지식인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지식인 촘스키가 언어학자 촘스키를 덮어버렸습니다. 한국인 독자 대부분이 선생님을 언어학자로서가 아니라, 논객으로서, 지식인으로서 소비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뒷날의 지성사학자들은 선생님을 사르트르적 의미의 지식인으로보다는 언어학자나 인지과학자로 기록할 것입니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이룩한 소위 촘스키혁명은, 페르디낭 드 소쉬르 선생님이 ‘체계’라는 이름으로 ‘구조’를 발견한 이래, 인문학의 가장 커다란 혁명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넓은 의미의 정치에 관해 쓴 책은 언어학에 대해 쓴 책 이상으로 많고 다양해서, 선생님의 이념적 위치를 확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데카르트에서 백과전서파로 이어지는 프랑스 이성주의와 계몽주의의 선 위에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만 어렴풋이 가늠할 뿐입니다. 선생님은 냉전 시절 미국에 대한 가장 혹독한 비판자이셨으면서도, 그 못지않게 소비에트제국주의에 펜 끝을 겨누셨습니다. 선생님의 관심 영역은 너무나 넓습니다. 소위 ‘시사적’인 어떤 일도 선생님의 눈길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선생님이 한때 자임하신 대로 선생님을 무정부주의적 노동조합주의자(anarch

o-syndicalist:이하 AS)라고 부르겠습니다. 선생님의 AS는 역사적 사회주의에도 자본주의에도 비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선생님은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 자체를 부인합니다.

프랑스 언어학자 미추 로나와의 인터뷰집 <언어와 책임>의 한 대목에서, 선생님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민주주의의 승리로 보는 프랑스의 일반 여론에 반박하며, 그 사건이 제기한 진짜 질문은 ‘닉슨이 제 정적들에게 사악한 수단들을 사용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희생자였느냐’라고 지적하셨습니다. 멍청한 닉슨이 힘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실수를 범해서 몰락했을 뿐이라는 거지요. 워터게이트 사건이 단지 지배계급 사이의 권력 다툼 양상이었을 뿐 민주주의와는 무관하다는 선생님의 관찰에는 분명히 깊은 통찰이 있습니다. 반면에 공화당과 민주당을, 더 정확하게는 이 양대 정당의 정치엘리트들을 똑같이 비판하는 선생님의 논변에 저 같은 리버럴로서는 선뜻 공감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2000년 대선에서 ‘반-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조지 부시 주니어가 대통령으로 ‘선포’되지 않았다면, 인류의 역사는 다른 경로를 밟았을 것입니다.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앨 고어가 대통령으로 ‘선포’되었다 하더라도 9·11은 일어날 수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고어라면 9·11의 반격을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마무리했을 공산이 큽니다. 부시와는 달리, 거짓된 정보와 호승심에 기대어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서 오늘날 IS의 탄생까지 초래하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녹색당 후보 랠프 네이더에 대한 투표가 공화당의 극보수주의자를 대통령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을 때 양식 있는 유권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미국인이 아닌 저에게도 골칫거리입니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지형에서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AS가 표현의 자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무정부주의는 국가의 간섭을 (이상적으로) 없애거나 (현실적으로) 최소화하는 것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일 제3제국 시절의 홀로코스트를 거의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로베르 포리송을 선생님이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변호했을 때 많은 비판을 받으셨던 것처럼, 표현의 자유에 한계가 없느냐의 여부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안네의 일기>가 아버지 오토 프랑크에 의해 심하게 편집됐다는 사실을 밝혀내 마침내 그 책이 부녀의 공저로 인정되게 한 포리송의 공로는 물론 큽니다. 그러나 선생님도 부인하시지 않는 홀로코스트를 거의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포리송의 주장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되어야 하는지 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안네의 일기>가 거짓말이라는 것과 홀로코스트가 없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포리송에게 린치를 가한 일단의 유대인 테러 그룹은 물론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포리송을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내린 프랑스 사법부, 포리송을 교수 자리에서 쫓아낸 대학까지 비판받아야 하는지 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리버태리언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AS를 자임하시는 한, 표현의 자유가 선생님께 성역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처럼 평범한 리버럴이 추종하기에는 선생님이 너무 래디컬한 분이시라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양대 정당 엘리트들을 무차별적으로 대할 것이냐, 또 표현의 자유에는 한계가 없느냐 여부는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만이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거대 야당과 군소 야당들은 지리멸렬합니다. 한국 정부는 반동개혁의 흐름 속에서 한국 현대사를 주류 역사관과 동떨어진 단 하나의 수정주의적 관점으로 채색하기 위해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정권판(版) 수정주의가 홀로코스트 부인만큼 과격하지는 않을지라도, 그것이 개인이 아니라 정권의 강한 의지라는 점이 저를 걱정스럽게 합니다. 선생님께 몇 마디 투정을 부려본 것은 그래서입니다. 선생님의 언어로 다시 한번 축하의 말씀을 올립니다. Happy birthday to you, Sir. Many glad returns of the day!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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