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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이 낱말을 프랑스어로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래도록 뤼테토필(lutetophile)을 자임했습니다. 뤼테토필은 ‘파리애호가’라는 뜻으로 제가 만들어본 말입니다. 파리 센 강의 시테 섬과 그 둘레의 고대 취락공간을 일컬었던 루테티아(Lutetia)에 ‘애호가’라는 뜻의 접미사 ‘필’을 덧붙인 거지요. 라틴어 이름 루테티아의 프랑스어 형태 ‘뤼테스’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파리의 이명(異名)으로도 쓰입니다. 생미셸 대로(大路)에 자리잡은 ‘뤼테스’라는 카페-레스토랑에 가본 분도 많으실 겁니다.

1992년 가을부터 1998년 봄까지 저는 여러분의 도시에 살았습니다. 저널리즘 연수를 받으러 파리에 갔다가 그 생기에 반해서 가족과 함께 그냥 눌러앉아 버린 겁니다. 1997년 말 한국에 외환위기가 터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원화(貨)의 값어치가 순식간에 반으로 동강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파리에서 허기진 산책자로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제가 파리에 산 시절은 제 30대 후반과 거의 포개집니다. 저는 그 시절을 제 삶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합니다. 파리는 제가 서울 다음으로 정을 준 도시이며, 서울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서울은 너무 큰 도시여서, 예서 반세기를 산 제게도 낯선 구역이 많습니다. 그러나 파리는 도시 한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서너 시간이면 걸을 수 있는 도시입니다. 실제로 저는 이따금 파리의 북쪽 끝 포르트 드 클리냥쿠르에서 남쪽 끝 포르트 도를레앙까지 이리저리 해찰하며 걷곤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파리는 산책을 유혹하는 도시니까요. 제가 서울에서 길을 잃는 수는 있겠지만, 파리에서 길을 잃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딱 20년 전 여름, 파리 지하철 생미셸 역에서 폭탄 테러로 다수의 사상자가 났었습니다. 저는 그때 꽤 놀랐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서울에서는 폭탄 테러라는 걸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얼마 뒤로도 지하철역과 백화점에서 폭탄 테러가 한두 차례 더 일어났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즈음 파리시는 거리의 휴지통을 죄다 밀봉했고, 지하철에선 주인 없는 가방을 신고하라는 방송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회상하는 파리는 안전한 도시였습니다. 서울만큼이나, 어쩌면 서울 이상으로 안전한 도시였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으슥한 거리를 걸어도 아무런 불안감을 느낄 수 없는 도시였습니다. 저는 종종 깊은 밤이나 새벽의 파리 거리를 하염없이 걷곤 했습니다. 짙은 어둠 속의 파리와 밝은 빛 아래의 파리가 어떻게 다른 느낌을 주는지는 제가 여러분보다 더 잘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13일 밤의 동시 다발 대규모 테러에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저 역시 그 밤에 파리에 있었다면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프랑스 정부가 집회 금지 조처를 내렸는데도, 여러분은 그 이튿날부터 공화국 광장에 모여 “두렵지 않아!”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 구호는 두려움 속에서 두려움을 떨쳐내려는 안간힘으로 들렸습니다. 광신도들의 폭탄과 총기 앞에서 대범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한쪽 편의 테러리스트는 다른 쪽 편의 자유의 투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테러리스트가 중세의 기사도에 맞먹는 명예심을 지닌 시절도 있었습니다. 자유의 투사라는 직분에 충실한 테러리스트를 가장 실감나게 그린 것은 알베르 카뮈의 희곡 <정의로운 사람들>일 것입니다. 1905년 러시아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소재로 삼았다는 이 작품은 폭력에 대해 엇갈린 관점을 지닌 테러리스트들을 등장시킵니다. 한쪽 끝에는 혁명이 시(詩)라고 생각하는 칼리야예프가 있습니다. 다른 쪽에는 오직 폭탄만이 혁명이라고 생각하는 스테판이 있습니다. 칼리야예프는 “명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남은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스테판은 “명예란 화려한 마차를 소유한 족속들만 누리는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작가가 칼리야예프 편에 선다는 것이 또렷해지지만, 카뮈는 스테판에게도 그 나름의 명예를 헌정합니다. 그는 “땅 위의 단 한 사람이라도 감옥에 있는 한, 자유는 내게 또 다른 감옥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고, 굶주리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명예롭지 않은 죽음도 기꺼이 택할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테러리스트는 자유의 투사가 지녀야 할 품격을 잊거나 잃었습니다. 이번 파리의 테러리스트에게 명예욕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명예심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좌절이나 수모와 아무런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참혹하게 살해했습니다. 2001년 9·11 테러리스트들이 서방의 가장 상징적인 곳을 목표물로 삼았다면, 이번 11·13 테러리스트들은 그저 가장 쉽게 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목표물로 삼았습니다. 어떤 언어의 마술로도 그들을 변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이번 11·13 테러를 겪은 프랑스의 젊은 세대를 ‘바타클랑세대’라고 명명했더군요.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바타클랑 콘서트홀의 이름을 따서 말입니다. 사실 희생자 대부분이 30대 아래의 젊은이들이라고 하니, 이 젊은 세대가 그렇게 불릴 만도 합니다. 젊은 시절 깊은 외상을 입은 이 세대는 68년 5월 세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훨씬 깊게, 심성과 습속의 변화를 겪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여러분은 덜 불행한 사람입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드니를 거쳐 뭄바이에 이르기까지 이 행성의 수많은 도시들이 기념물들을 삼색 빛깔로 치장하며 여러분을 위로했습니다. “나는 파리다(Je suis Paris)”라는 구호가 전 세계에 메아리쳤습니다.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꽃과 촛불과 데생이 가득했습니다. 그것들은 슬픔의 상징이자 연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파리가, 프랑스가 세계인들에게 보급한 어떤 가치 덕분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자유, 평등, 연대라는 프랑스 대혁명의 보편적 가치겠지요. 토머스 제퍼슨은 모든 사람에게는 조국이 두 개라면서, 하나는 자기 조국이고 또 하나는 프랑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나라에 헌정된 가장 곡진한 찬사일 것입니다.

가자지구나 바그다드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파리나 보스턴에서 일어나면 전 세계적 애도의 대상이 됩니다. 누군가가 폭탄테러로 죽었을 때, 그가 다수로부터 애도의 헌화를 받느냐 못 받느냐는 그의 국적이 결정합니다. 그가 프랑스인이거나 미국인이라면 헌화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시리아인이라면 헌화를 받기는커녕 그의 이름도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요즘 파리 참사 직후 개설된 En memoire@ParisVictims라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력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그리고 아린 가슴으로 그들을 애도합니다. 바그다드나 다마스쿠스에서 테러로 살해된 사람이라면, 제가 그런 방식으로 그들을 애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불공평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일상의 일은 뉴스가치가 없으니 기자들의 흥미를 끌 리가 없고, 애도든 분노든 어떤 분위기가 익으려면 기자들이 선정적 기사를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는 전시(戰時)”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국가(IS)의 테러리스트들은 가장 야비한 싸울아비들입니다. 그들은 프랑스군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민간인들을 무차별로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테러가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그들의 호언이 허풍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 또는 다른 대륙의 도시도 IS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공습만으로 IS를 궤멸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서방국가들이나 러시아가 지상군을 투입해 IS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몰아낸다고 해도, 그들은 리비아를 비롯한 다른 무슬림 국가에 둥지를 틀 수 있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듯, IS를 낳은 것은 조지 부시 주니어의 분별없는 이라크 침공입니다. 또 유럽을 비롯한 비-이슬람권 사회에서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 계속된다면, IS는 어디서나 새로운 자양분을 얻을 것입니다.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IS는 또 다른 이름으로 번성할 것입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인류의 마지막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당장, 솅겐협정이 휴지조각이 되고, 유럽행 비행기를 탈 때도 미국행 비행기를 탈 때처럼 번잡함을 감내해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시민적 자유의 위축이 우려스럽습니다.

이번 테러의 희생자들을 마음 깊이 추모하면서 여러분에게 위로와 연대를 보냅니다. 누군가가 말했듯, IS 테러리스트들은 여러분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갔지만 단 한 가지만은 빼앗아가지 못했습니다. 삶의 기쁨 말입니다. 파리가 곧 생기를 되찾기 바랍니다. 아니 벌써 되찾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 꺼진 에펠탑이 다시 점등한 이상, 파리는 여전히 빛의 도시입니다.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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