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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거의 다 갔구나. 그 해를 살아낸 사람들에겐 모든 해가 다사다난한 해이기 마련이지만, 올해는 특히 다사다난했던 것 같다. 세상에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훨씬 많았지.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시리아 내전과 파리 테러였고. 미국에서 무슨 테러 소식이 들릴 때면 제일 먼저 너랑 아침이 생각이 난단다. 이기적 걱정이지.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겠느냐마는.

엊저녁에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을 오랜만에 다시 읽다가 책갈피에 꽂혀 있는 영화 티켓을 한 장 발견했다. 지난해 너희 내외랑 부산영화제에서 본 <한 여름의 판타지아> 티켓이었어. 그게 그해 10월8일 오후 8시였고, 메가박스 해운대 2관이었네. 내 좌석 번호는 E7이었고. 영화 스토리는 벌써 가물가물한데 음악은 아주 생생해. 사실은 지난 6월에 한국에서 발매된 네 앨범을 사서 종종 듣고 있단다. 네 생각 하면서.

보고 싶은 민휘, 내 며느리!



며느리 이름을 부르는 게 우리 전통 법도는 아니다만, 글쎄, 편지에서라도 너를 ‘며늘아가’라든지 ‘아가’라고 부르는 걸 상상만 해도 어색해서 웃음이 터질 것 같으니, 내가 영 시아버지 체신이 아니구나. 사실은 네 시아빠, 더 나아가서는 그냥 아빠가 되고 싶은 게 내 욕심이다. 네 친정아버님이 경계하시겠구나. (큭큭) 너도 들었는지 모르겠다만, 나는 내심 둘째가 딸이었으면 했단다. 그래서 아침이가 태어났을 때 조금 실망했어. 아침이가 자란 뒤 내가 주책없이 그 아이에게 더러 그런 말을 하면, 걔가 서운해하곤 했지. 딸 욕심은 아침이가 태어나고 한참 뒤에야 접었단다.

너랑 도탑게 정이 쌓이기도 전에 너희 내외가 뉴욕으로 간 게 아쉽다. 너희들이 ‘헬 조선’이 싫어 ‘탈-조선’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너 도피한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에 속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의 원초적 본능이라 할 연애감정조차 억누르다 못해 잃어버린 젊은이들이 한국에는 많지. 삼포세대가 오포세대를 거쳐 어느새 구포세대가 돼 버렸고, 언젠가부터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달관세대라는 말까지 들리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비록 아직 직장은 못 잡았지만 결혼하고도 공부할 수 있는 너희는 운이 좋은 사람들이야. 사실 네게 이런 말을 하기가 한편으로는 계면쩍기도 하다. 너희 세대의 힘듦은 내 또래의 세대적 이기심 탓이기도 하니 말이야. 젊은이들의 절망이 한국을 포함한 몇몇 나라만의 것인지 세계 보편적 현상인지는 모르겠다. 보편적 현상이라면 인류의 미래는 정말 어둡구나.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건 그 공동체에 희망이 없다는 뜻이지.

너희는 ‘한국의 집’에서 혼례를 올리는 바람에 주례가 없었다만, 내가 더러 젊은이들 주례를 설 때 꼭 하는 말이 있단다. 결혼이라는 건 아내와 남편 두 사람만의 코뮤니즘이라고. 세상 모든 사람이 네게 등을 돌린다 해도 아침이는 네 편이 돼야 해. 마찬가지로 세상 모든 사람이 아침이에게 등을 돌린다 해도 너는 아침이 편이 돼야 해. 사실 사랑이 별게 아니라 그렇게 편들어주는 게 사랑이란다. 그리고 힘든 삶을 앞으로 밀쳐내는 힘은 결국 그런 사랑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너의 둘만의 코뮤니즘이, 그런 둘만의 이기주의가 공적 정의에 부합하기 바란다. 나는 너희가 한국인들이나 뉴욕시민들에게만큼 이 행성 모든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에 관심을 지니기를 바라.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비참에 너희들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하기 바라. 그건 너희들이 세계시민이 되기 바란다는 말이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세계시민이면서도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젊은이들이기를 바라. 너희들이 도피자들에 속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은 그런 뜻이었어.

너는 아직도 나를 좀 어렵게 여기는 것 같더라만, 나는 네가 딸처럼 느껴져. 그리고 네가 날 아버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빠라고 불렀으면 더 좋겠어. 그렇지만 그걸 네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게다가 네가 날 아빠라고 부르면 분명히 네 친정아버님이 서운해하실 거야. (큭큭). 그래도 이 편지에서는 너를 딸이라 부르고 싶구나. 프랑스에서는 며느리를 ‘예쁜 딸(belle-fille)’이라고 부르지.

내 사랑하는 딸, 민휘!

너랑 아침이의 공부는 잘돼 가니? 뭘 공부하는지 나도 잘 모르는, 아침이보다는 네가 공부한다는 영화음악에 더 관심이 간다. 내 귀에 고전음악은 바흐를 넘어가면 소음으로 들려. 가벼운 음악을 좋아한다는 뜻인데, 영화음악 가운데 내 마음의 줄을 건드리는 게 많아. 대뜸 떠오르는 게 영화 <대부>와 <러브스토리>에 삽입된 음악들이야. <태양은 가득히> 테마음악도 좋아하고. 아, <부베의 연인> 테마음악도 좋다! 그러고 보니 내가 <졸업>이라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상당 부분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의 노래들 때문이야. 너도 잘 알지? ‘침묵의 소리’ ‘스카보로 시장’ ‘로빈슨 부인’ 같은 노래들. 한국 영화음악으론 뭐가 있을까? 대뜸 <별들의 고향>이 떠오르네. 그 영화의 테마음악만이 아니라 거기 삽입된 노래들 모두 이장희라는 분이 만든 걸로 알고 있어.

이장희 선생 얘길 하니까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아침이가 학부에서 단과대학 밴드부 활동을 했던 건 잘 알지? 그즈음 내가 아침이에게 이장희 선생의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거든. 그런데 이 친구는 이장희라는 이름도 모르는 거였어. 아무리 얼치기라도 음악을 한다는 친구가 말이야. 그때 나는 세대의 벽이라는 게 이렇게 높구나, 절감했단다. 하긴 80년대생인 아침이가 70년대 대중음악가들을 잘 모르듯이, 50년대생인 나도 90년대 이후 대중음악가들을 거의 모르지.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어린 가수들도 모르고.

그러고 보니 너와 아침이가 서로 너나들이 하는 게 생각난다. 부부 사이의 호칭이야말로 세대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다. 내 세대 사람들 가운데 좀 구식 스타일은 여보 당신이라고 부르는 게 예사고, 좀 신식인 사람들은 나와 네 시어머니처럼 서로 애칭을 부르지. 네 둘째시고모는 남편을 형이라고 부르더구나. 그보다 아랫세대 새댁들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여자 쪽이 나이가 위인 경우엔 남편이 아내를 누나라 부르고. 나는 너희들이 나이차가 있으면서도 너나들이 하는 게 보기 좋다. 그건 너희들 관계가 민주주의적이라는 뜻이니까.

<졸업>이라는 영화를 주로 거기 나온 노래들 덕에 기억한다는 말도 했다만, 과거를 환기시키는 감각 중에 청각만 한 것은 없는 것 같아. 내가 93년 5월, 30대 젊은 기자였을 때 스페인에 취재를 간 적이 있어.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비야에서 그라나다로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휴게소가 있었어. 거기서 밀크커피를 마시는데 ‘알람브라궁전의 회상’이 내내 흘러나오는 거야. 알람브라궁전은 너도 알다시피 이슬람교도들이 스페인에서 쫓겨나기 얼마 전 그라나다에 세운 크고 아름다운 궁전이지. 그 기타 연주곡을 그때 처음 들은 것도 아닌데, 그 뒤로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알람브라궁전이 생각나는 게 아니라(나는 그 궁전에 몇 차례 가봤단다), 그 휴게소가 생각나는 거야. 그 휴게소 풍경, 처음 그라나다에 가며 겪은 가슴 설렘, 그런 기억들이 되살아난다는 거지. 지금도 ‘알람브라궁전의 회상’을 들으면, 그 허름한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는 내가 떠올라.

민휘! 내 딸, meine Tochter!

너와 아침이가 뉴욕에서의 삶을 충분히 즐겼으면 해. 이 행성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가 뉴욕 아니니. 지구제국의 메트로폴리스가 미국이라면, 그 메트로폴리스의 다운타운이 뉴욕이니까. 너희들이 한국에 돌아올 때는, (물론 너희들이 언제 돌아올지, 또 돌아오더라도 완전히 귀국할지 삶의 터전을 한국 바깥의 다른 곳에 마련할지는 모르겠다만) 너희들 머릿속에 전공분야의 지식과 기량 이상으로 뉴욕이라는 도시가 담겨 있으면 좋겠어. 젊은 날에 머물렀던 이방의 기억은 나이 들어서 삶을 떠받치는 힘이 된단다. 내게는 파리의 기억이 바로 그래. 되풀이하는 말이다만, 그럼으로써 너희들이 한국인이자 세계시민이 되길 바라.

아침이가 잘 알아서 하리라 믿지만, 집일은 꼭 나눠서 하렴. 물론 한쪽이 바쁠 땐 상대편이 더 많은 일을 하는 거고. 과천의 친정 어른들께 자주 안부 여쭈렴. 네가 안부 여쭙는 것 이상으로 아침이도 그쪽 어른들께 자주 인사올리도록 네가 코치도 좀 하고.

너와 아침이는 물론 세상 모든 너희 세대 젊은이들에게 새해가 올해보다 더 살 만한 해가 되기를 빈다. 신을 믿지 않는 내가 누구한테 비는 걸까? 아마 기도의 힘은 많은 사람이 같은 것을 바랄 때 발현할 테다. 모두들 무엇보다도 부디 건강하기를! 딸! 사랑한다!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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