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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반세기도 전에, 저명한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은 ‘지구촌’이라는 말로 이 행성의 미래를 간추렸습니다. 역사적 사회주의가 가뭇없이 사라져 국경의 벽이 더 낮아진 1990년대 이후에는 ‘지구제국’이라는 은유도 나풀거립니다. 그 제국의 메트로폴리스가 바로 아메리카합중국입니다. 냉전 시기가 미소(美蘇)체제(Pax Russo-Americana)였다면, 포스트 냉전 시대는 미국체제(Pax Americana)입니다. 중국의 급작스러운 부상으로 미중체제(Pax Sino-Americana)라는 말이 더러 쓰이기도 하지만, 이 말은 심한 과장입니다.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추월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나, 군사력이나 문화적 헤게모니나 정치적 민주주의의 난숙도에서 중국을 미국에 견줄 수는 없습니다. 당신들 미국인은 할리우드 영화와 CNN 뉴스와 맥도널드 햄버거와 코카콜라로 지구인의 취향을 지배합니다. 인류는 그가 어디에 살든 당신들의 나라와 관련을 끊을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지구제국의 운명, 인류의 운명은 워싱턴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프랑스 외무부 장관을 지냈던 위베르 베드린이 매우 적절히 명명했듯, 냉전 종식 뒤의 미국은 슈퍼파워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하이퍼파워인 것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인류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신들이 조지 부시 주니어 대신 앨 고어를 확고히 지지했다면, 그 뒤 이 행성의 역사는 사뭇 달라졌을 것입니다. 문명의 충돌이 설령 피할 수 없는 경로였다고 하더라도, 부시가 일으킨 이라크 전쟁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테러그룹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미국을 휘젓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현상이 우려스러운 것은 그래서입니다. 물론 저는 세계민주주의의 젖줄이라 할 당신들의 나라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그 모든 공적 비도덕성에 당신들 가운데 상당수가 환호하는 현실에 저는 지레 겁이 납니다.

트럼프는 지난해 6월 멕시코 이민자들을 마약사범이자 강간범이라고 비난하는 것으로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사실 출마 선언 전에도 트럼프는 자신이 인종주의자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미 2013년 그는 트위터에서 “대도시의 폭력범죄 대부분은 흑인과 히스패닉이 저지른다”고 했습니다. 대선 출마 선언 뒤 아이오와에서 가진 기자회견 도중엔 자신의 이민정책을 추궁하는 히스패닉계 기자 호르헤 라모스를 쫓아내버렸습니다. 아내가 히스패닉계여서 스페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젭 부시에 대해선 “그는 아내 때문에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젭 부시는 미쳤다. 그가 멕시코말을 한다는 것에 누가 신경 쓰나. 여긴 미국이라고! 영어!”라고 조롱했습니다.

트럼프는 멕시코 정부가 의도적으로 범죄자들을 미국으로 보낸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멕시코 정부는 우리보다 훨씬 스마트하고, 날카롭고, 교활하다. 멕시코 정부가 악한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내는 것은 그들을 위해 돈을 쓰지 않기 위해서다. 그들을 돌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히스패닉 이민자들을 범죄자, 특히 강간범이라고 낙인찍었지요. 그 발언의 진의를 CNN 기자가 묻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멕시코계 이민자를 비롯한 유색인 이민자들은 살인자들이자 강간범들이라고 다시 못박았습니다.



공화당 후보들의 첫 텔레비전 토론회 진행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폭스방송의 메건 켈리가 트럼프에게 과거의 여성혐오적 발언들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그녀의 질문이 우스꽝스럽고 근거도 없다며, “그녀의 눈에서 피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덧붙여, 켈리가 생리 중이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는 식으로 대꾸했습니다. 트럼프에게 여성은 이민자들과 함께 늘 경멸과 조롱 대상이었습니다. 롤링스톤지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칼리 피오리나 공화당 대통령 예비후보의 외모를 노골적으로 비웃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을 보라. 누가 저 얼굴에 투표하겠는가. 저 얼굴을 우리 다음 대통령으로 상상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지요. 트럼프의 공격 대상은 마침내 장애인으로까지 번졌습니다. 관절만곡증을 앓는 뉴욕타임스의 서지 코발레스키 기자를 그가 기이한 몸짓 흉내로 비하하던 것을 당신들도 기억할 것입니다.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미국의 많은 아랍인들이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된 후 환호했다”고 주장해 아랍계 미국인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겼을 뿐만 아니라, 드디어 지난해 12월에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무슬림들의 미국 입국을 완전히 금지하겠다고 선언해 세계를 경악시켰습니다. 그의 이 발언엔 위헌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얄궂게도 그의 지지율은 더욱 치솟았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같은 극우 선동 막말꾼이 공화당 후보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지구제국의 메트로폴리스가 도덕적으로 극히 허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들도 살기가 팍팍한 모양이라고 저는 짐작합니다. ‘미국의 꿈’은 이제 사라져버렸습니다. 당신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불만을 배출할 대상으로 인종적 성적 신체적 소수파를 고른 것은 프랑스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가 발설한 ‘희생양’을 연상시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차별의식을 지닐 수 있습니다. 인격의 그런 부정적 측면을 완전히 씻어내는 것은 누구에게도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두지 않고 공적으로 발설하는 것은, 그리고 그런 공적 발설에 환호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제 차별주의에 대한 부끄러움을 잃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에 대한 열광적 지지가 특히 백인 남성 저소득층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염려스럽습니다. 그들은 미국이라는 인종의 도가니에서 백인 남성이라는 사실밖에 내세울 게 없는 일종의 ‘피해자’들입니다. 그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을 공격하는 대신 소수인종, 여성, 장애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 양극화에서 오는 경제적 불안과 무슬림 테러에 기인한 위기감을 미국 사회의 가장 약한 이들을 공격하며 쓰다듬고 있는 중입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트럼프는 대뜸 히틀러를 연상시킵니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세계인들에게 우스꽝스러운 것 이상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그것은 그가 유럽인들의 지지도, 아프리카인들의 지지도, 아시아인들의 지지도 아닌 제국의 메트로폴리스 거주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외교 문제나 경제 사회 문제를 무조건 “지금 정치인들이 멍청해서 +그렇다”는 말로 요약하고 “나는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사업을 해왔으므로 정치도 잘할 수 있다. 내가 하면 다 잘한다”고 우겨대는 선동가에게 당신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열광한다는 사실이 무섭습니다.

미국과 맥락이 고스란히 포개지지는 않지만, 이민과 테러가 중요한 원인이 돼 당신들 가운데 일부처럼 극우화하는 시민들을 보게 되는 나라로 프랑스가 있습니다. 지난해 파리 테러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프랑스 극우정당 민족전선은 집권 사회당과 제1야당 공화당을 집어삼킬 듯 보였습니다. 2차 결선 투표에서 사회당과 공화당의 연대로 민족전선이 패퇴하기는 했지만, 그 정당의 당수 마린 르펜은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 유권자 네 사람 가운데 셋이 차기 대통령으로 사회당 소속의 현직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도, 공화당 소속의 전직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도 원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최근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린 르펜이 대통령이 되는 프랑스보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자리를 넘보는 미국이 훨씬 더 두렵습니다.

프랑스는 비록 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고만고만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 나라에서 극우정파가 힘을 떨치고 심지어 집권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인류에게 치명적 위협이 되지는 않습니다. 작은 몸집으로 할 수 있는 악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구제국의 메트로폴리스에서 극우정파가 힘을 떨친다면, 그것이 지금처럼 제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 인류에게 측량할 수 없는 재난을 불러옵니다. 당신들은 메트로폴리스 시민으로서 누리는 특권에 비례하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원주민들의 학살과 노예 제도, 거듭된 정복전쟁으로 이뤄진 나라 만들기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미국은 결코 위대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기실 에이브러햄 링컨에서 로자 파크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국인들이 위대했습니다. 부디 당신들이 위대해지기 바랍니다.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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