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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가자,
해서 오아시스에서 만난 해바라기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겠으나
딱 한 송이로
백만 송이의 정원에 맞서는 존재감
사막 전체를 후광(後光)으로 지닌 꽃
앞발로 수맥을 짚어가는 낙타처럼
죄 없이 태어난 생명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성모(聖母) 같다
검은 망사 쓴 얼굴 속에 속울음이 있다
너는 살아 있으시라
살아 있기 힘들면 다시 태어나시라
약속하기 어려우나
삶이 다 기적이므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사막 끝까지 배웅하는 해바라기
김중식(196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혹여 비라도 오면 “한 호흡으로 1년 치 폐활량을 들이켜고는/ 또다시 속타는 잠을 잔다”는 사막에 한 송이의 해바라기가 기적처럼 서 있다. 오직 한 송이만 서 있지만 백만 송이의 꽃이 핀 정원에 버금가는 존재감이다. 해바라기의 배광(背光)은 사막 전체요, “지평선이 (해바라기) 한 송이를 위한 꽃받침이다”. 사막에 서 있는 해바라기는 속울음을 울면서도 낙타처럼 억세고 질기고, 성모처럼 성스럽고 인자한데, 열사(熱沙) 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격려하며 사막의 끝까지 따라와 배웅을 한다. “수초가 물결 속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이 노래 속에 집을 짓듯이” 우리는 이 세월을 살아가는 것이지만 삶이 곧 기적이므로 잘 견뎌내서 후일에 다시 만나자면서. 그러니 우선 이 순간순간을 살자, 살아보자며.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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