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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경향시선

무인도

opinionX 2018. 8. 6. 16:51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것 같을 때면 어디

섬으로 가고 싶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결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떻게 죄짓고 어떻게 벌받아야 하는지

힘없이 알 것 같을 때는 어디든

무인도로 가고 싶다

가서, 무인도의 밤 무인도의 감옥을,

그 망망대해를 수혈받고 싶다

어떻게 망가지고 어떻게 견디고 안녕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그만 살아야 하는지

캄캄히 다 알아버린 것 같은 밤이면 반드시,

그 절해고도에 가고 싶다

가서, 모든 기정사실들을 포기하고 한 백 년

징역 살고 싶다

돌이 되는 시간으로 절반을 살고

시간이 되는 돌로 절반을 살면,

다시는 여기 오지 말거라

머릿속 메모리 칩을 그 천국에 압수당하고

만기 출소해서

이 신기한 지옥으로, 처음 보는 곳으로

두리번두리번 또 건너오고 싶다

이영광(196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보통은 처세를 배우려고 하는데 시인은 이를 거부한다. 이미 정해진 대로 고분고분 따라가는 것을 물리친다. 모든 기정사실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한다. 그럴 때면 무인도에 가서 망망대해가 되고, 절해고도가 되겠다고 한다. 재지 않고, 몸으로 부딪치고, 삶과 겨루며, 길들여지지 않는 섬이 되겠다고 말한다. 그렇지, 가령 우는 일에 무슨 방법이 따로 있겠는가. 그냥 펑펑 우는 것이지. 시인은 시 ‘촛불’에서 “나는 타오른다/ 나는 일어선다/ 나는 물결친다/ 나는 나아간다”라고 노래한다. 이 두둑한 배짱과 겁 없음과 원시림 같은 영혼이 좋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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