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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감자를 깎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감자를 깎아 항아리에 담근 어머니
앙금을 내려 떡을 빚으면
떡을 빚으면
대관령 호랑이도 내려온다고
떡을 먹지 않는 호랑이도 굶지 않는다고
어머니는 감자를 깎는다
감자꽃빛 새벽별이 머리 위에 빛날 때
치성 올려
내 안에 앙금을 내리고 있다
내 안에 별빛을 내리고 있다
-윤후명(1946~)
출처:경향신문DB
어머니들은 감자를 깎는다. 어머니들은 감자를 삶아 그릇에 담아낸다. 감자를 갈아 그 앙금과 건더기로 반죽을 해서 쫄깃쫄깃한 감자떡을 쪄서 내놓으신다. 감자를 깎는 일은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배워온 일. 흰색 또는 자줏빛의 소박한 듯 고운 감자꽃이 피고, 감자를 캐는 날이면 뽀얀 분이 잘 오른 토실토실한 감자들이 흙냄새와 함께 비탈진 밭에 가득하여 먹고사는 일에 잠시 걱정을 덜기도 했다.
어머니들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치성을 올린다.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드린다. 치성을 올리는 일은 감자를 심던 아득한 때부터 이어져온 일. 내 고향에서도 밥할 때 감자를 함께 쪄 먹곤 했다. 배가 고픈 때에 끼니로 먹던, 주먹만 하던 통감자들.
강릉이 고향인 윤후명 시인은 강릉을 일러 “뒷산 호랑이가 나무 되어 걸어내려와/ 처녀 데려가 살았다는 옛 곳”(시 ‘강릉 가는 길’)이라고 썼고, 한 산문에서는 “대관령은 커다란 고래처럼 넘실거린다. 눈으로 가늠할 수 없는 한 더미의 고래다. 바다는 큰 산을 받들고 있다. 큰 산의 지느러미가 하늘을 너울거린다. 대관령이다!”라고 썼다.
큰 산이 우뚝 솟고, 해송(海松)과 곱고 흰 모래톱의 바닷가 너머로 넓고 격렬한 대양(大洋)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 강릉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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